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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베르니의 수련과 뜻밖의 AI 유감

프랑스 지베르니와 클로드 모네

by 블루밍드림

시대유감


이러다간 아무래도 '어느 날 AI가 내 삶에 불쑥 들어왔다'라는 생경한 제목으로 긴 에세이 한 편을 쓰지 않을까 싶다. DX(디지털 전환)이니 AX(인공지능 전환)이니 이질적 이름을 덧붙인 팀들이 우리 회사에도 많아진다 싶더니, 어느 순간 감사(監査)라는 고루한 업무를 하는 나마저 격동의 AI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었다.


데이터는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은 어떻게 하며, 문제의 식별과 사실의 검증은 또 어떻게 하는지부터 회계원칙에 이르기까지 내 지식과 경험과 노하우를 죄다 AI 개발자에게 쏟아붓다 보면, "이러다간 뭐 검사가 기소(起訴)하는 일이나 판사가 판결 내리는 거나 죄다 AI에게 넘겨도 될 판국이네."와 같은 볼 멘 소리를 해대곤 하였다.


강구연월


하필이면 내가 세상을 사는 이 시대에 세상이 전부 다 제 것인 양 마음대로 더럽히는 자들이 설쳐댈게 뭐란 말인가. 방사능 낙진에 오염된 공기인 줄 알면서도 그저 숨을 쉬기 위해 폐부를 열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분노가 끊이질 않다 보면, AI가 절대 사람인 척하게 내버려 두지 말라는 유발 하라리의 경고를 적극 지지하면서도, 차라리 AI가 세상을 다스리는 편이 더 나을까도 싶었다.


저녁이 되자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온 동네에 그득하고, 달빛마저 은은하여 연무(煙霧)에 비치었다... 강구연월(康衢烟月)의 이해를 똑바로 학습한 AI라면 속는 셈 치고 한 번 맡겨본들 무슨 유감일까 자조하였다.


오랑주리(오렌지 온실)


인공지능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신(新) 감정노동에 유달리 지친다거나 그저 숨 한번 깊이 들이킬 때 묻지 않은 고요함이 그리운 날이면 어쩔 도리 없이 추억 속을 헤집고 다녔다.


Le Matin Clair aux Saules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

파리에 봄이 오나 보다 싶던 어느 맑은 날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에는 천장에서 수직으로 쏟아져 들어온 햇빛이 가득 차 있었고,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도 그랬고, '석양'도 그랬고, 우리를 크게 에워싼 클로드 모네(1840~1926)의 거대한 수련 그림들은 그 빛에 반응하여 공명(共鳴)을 하였다.


Soleil Couchant (석양)


햇빛을 흠모하며 자라던 옛날 이곳 온실 속 오렌지 열매처럼, 우리나 버드나무나 수련이나 똑같은 빛을 받아 아주 미세하게 자라났다. 거의 수직으로 선 연못은 물 위에 뜬 빛과 색채를 우리를 향해 반사하였고, 여덟 점 모두 이어 붙이면 91미터나 된다는 수련 그림 속에서 하나의 모티프이기는 우리나 그것들이나 매나 마찬가지였다.


미술관을 떠나려니 해 뜨는 뽀얀 아침에 지베르니(Giverny)로 가서 연못에 드리운 버들가지 하나를 몰래 꺾어 들고 싶었다. "묏버들 가려 꺾어 임의 손에 보내오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가슴 절절한 이별의 증표인 듯 애정의 정표인 듯 가슴속 허전한 곳이 있걸랑 남몰래 심어 두고 싶었다.


지베르니


모네의 집 입장을 기다리며 줄 선 사람들

두어 달이 지나 버들가지 꺾어보려 지베르니로 향했다. 파리를 출발하여 모네의 고향이자 '인상, 해돋이'(1872)가 태어난 대서양 연안 도시 르아브르(Le Havre) 쪽으로 1시간 반 가량 차를 달렸다. 선홍빛 양귀비 꽃이 듬성듬성 피어난 시골 길가에 차를 대충 세우고 모네의 흔적을 쫓아온 이들을 따라 긴 줄에 섰다.



파리 근교를 떠돌던 모네는, 우연히 마주한 풍경을 가슴에 품었다가, 얼마큼 유명해진 마흔셋의 나이에 지베르니에 정착하였다.


분홍색 이층 집은 아뜰리에로 꾸몄고, 담쟁이덩굴이 벽을 타고 오르게 두었다. 방마다 청록색 덧창을 댄 큰 창을 두어 어디서든 잘 내려다 보이게 한 정원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였다.

2층 창에서 내려다보는 정원 풍경

해뜨기 전에 피어나는 꽃, 오후 햇살을 받아 꽃잎을 틔우는 꽃, 저녁노을 속에 봉오리를 여는 꽃... 정원은 그렇게 나뉘었고, 봄꽃이 피면 이내 여름꽃을 심었고, 그 곁에 다시 가을꽃을 심었다. 햇볕 잘 드는 방을 골라 창문을 열어젖히면 꽃과 나무 그것들을 아니 그리고는 못 배겼으리라.


모네의 정원


길게 늘어진 기다림과 북적이는 구경꾼들 속에서도 정원은 평온하였고, 평온한 정원은 무척 아름다웠다. 약간은 찹찹한 바람이 느긋한 발길을 따라 얼굴을 스칠 때면 그때마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쩌랴. 모네의 정원을 거닐던 그때의 나는 아마도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알 나이가 되어서는 흙마당 딸린 누옥(陋屋) 보단 수 백 송이 꽃을 피운 정원과 번듯한 집 하나가 나의 미래일 거라 믿었으리라. 하지만, 정작 지금이 되어서는 오히려 그때가 제일 좋았다며 그저 추억에 묻혀 살고 있을 뿐인 것을.


수련(睡蓮)


돈을 많이 번 화가는 땅을 더 사서 연못을 만들고 부엽(浮葉)의 정원을 가꾸었다. 연못 물이 드나드는 길목에는 일본식 아치형 다리를 놓았다. 다리 위에 빼곡하게 올라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우리도 연못을 내려다보았다. 연못은 아틀라스처럼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받쳐 들고 있었다.



호수에 뜬 달그림자가 그저 못 다 채운 탐욕의 미련으로만 바라보이는 눈동자엔 어떻게 비칠는지 모르겠다만, 하늘과 구름과 버들과 이따금씩 수면 가까이 헤엄치는 물고기와 소금쟁이가 방금 딛고 뛰었는지 휘엉휘엉 퍼져가는 물둘레... 군데군데 모여 핀 수련 꽃들... 내 눈동자는 짙푸른 색을 띤 연못 위에 걸려서는 바지런한 햇빛과 나른한 물빛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하릴없이 공명을 해대는 기시감의 존재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또 즉각 반사하였다.


모네의 정원이었기에 더 인상적이었을까. 그 모든 존재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플롯이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함께 사는 아름다운 구성이었다.


우리가 지베르니를 찾은 때는 수련이 가장 예쁘게 꽃을 피우는 계절이었다. 오후의 해가 뉘역뉘역 기울어갈 때까지 아직 한참의 여유로움을 남겨 두었기에 우리가 만난 수련들은 활짝 꽃을 피운채 하양 분홍이라고 말하는 색이 아니라 새로운 색채로 반짝였다.


정원과 연못을 통해 이상향을 빚어낸 화가는 백내장으로 시야가 혼탁해져서도 죽을 때까지 열정을 바쳐 수련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수련 연작은 숙명의 대업과도 같았다.



물은 꽃의 눈물인가

꽃은 물의 눈물인가

물은 꽃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고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다

(정호승 시인의 '수련' 중에서)




수련을 닮은 사람


다른 이들도 아마 그랬겠지만, 모네의 연못에서 고흐를 보았다. 고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났던 글에서 이미 고백했듯이, '인상, 해돋이'가 보고파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찾아갈 만큼 난 원래 고흐보다 모네를 더 좋아하였다. 하지만, 수련을 바라보며, 가혹하리만큼 잔인한 운명에 괴로워했을 고흐를 문득 그리워하였다.



되돌아서기는 참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떠나가며, 지베르니에 더 흠뻑 물들었다. 난데없이 여우비가 내렸다. 날씨를 어찌 그리 잘 알았는지, 그새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이웃집 높은 담벼락 창틀에도 예쁜 꽃들이 드리웠음을 알았을까. 드가가 이렇게 말했다지, “진정한 예술이란 당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따금씩 지베르니를 그리워하노라면, 늙은 화가의 집요한 아집(我執)이 내 가슴에도 수련 꽃이 자라게 했다. 본디 그 꽃은 한갓되이 시든 꽃잎이나 떨구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더러운 물에 자라도 오염되기는커녕 그 물을 정화하며 꽃을 피운다 하니, 내게서 퀴퀴한 냄새는 사라지고 그윽한 향기가 피어오르길 바랐다.


에필로그


퇴근길 종로3가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빠른 환승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바쁘게들 걸었다. 이런저런 옷차림과 생김새와 표정들 사이를 비집지나다 보면, 어떤 이의 안색에는 꽃이 피었고, 옮기는 걸음마다 시든 꽃잎을 떨구는 이도 더러 있었다. 내게도 과연 꽃이 피었을까, 기왕이면 이른 아침 막 깨어난 수련 꽃이면 좋으련만. 괜스레 남의 꽃이 더 아름답다 시샘이나 하는 것은 아닐까... 금세 잊어버릴 이런저런 괜한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사람들의 뒤를 바짝 쫓아서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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