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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타쿠나 May 06. 2024

아이와 해외여행: 가도 후회, 안 가도 후회

고생만 하고 돈 수백 만원을 바다에 버리는 일이 뭔지 나는 경험으로 안다.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에 가는 것이다. 항공사는 24개월 이전 아이에게는 항공운임의 10%만 받는다. 많은 부모들은 그 시기를 찬스라 여기고 고고씽을 외치지만... 곧 알고야 만다. 공짜 비행기는 항공사의 배려가 아닌 자신만만에서 비롯한 것임. '고생 많으신데 저희가 한 번 태워드릴게요, 두 번은 안 가려 할 테니 ㅎㅎ'


1. 공짜 비행기 태워야 하지 않겠어? -20개월


아이와 첫 해외여행을 했다. 꽤 많이 키워 갔는데도 필리핀 보홀에서의 남은 추억이라고는...핑크퐁과 뽀로로가 전부다. 케어가 버거울 때마다 유튜브를 틀어주다 보니 여행이 끝날 즈음 아이는 영상 중독상태가 됐다. 비행기 탈 때, 식당에서 밥 먹을 때, 간간이 남편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려 할 때 모두 유튜브를 틀었다. 구역의 소음유발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사진은 거의 이런식이다. 아이의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다.

엄마, 아빠, 필리핀 베이비시터까지 3명이 애 한 명에 붙어 절절맸다. 애 셋이 된 지금 돌이켜보니 헛웃음이 나오는 모습이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때만의 힘듦이 있다. 애 데리고 해외여행은 어쨌든 본인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애가 많든 적든 고역의 총량은 비슷하다.


여행이 끝나고 부부는 합의했다. 이제 애 데리고 밖으로 가지 말자. 쪽빛바다는 징징대는 울음소리에 지쳐버린 내 마음에 아무 물결을 일으키지 못했다. 구정물을 바라봐도 좋으니 혼자 있고 싶었다.


2. 일본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28개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필리핀의 교훈을 잊고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정념의 인간이었고 여권 도장 찍을 생각에 설레할 에너지가 있었다. 친한 선배와 후쿠오카 여행을 준비했다. 마침 아이들 나이가 같아서 여행코스 짜기도 쉬웠다. 음식도 맛있고 인프라도 잘 돼 있고 비행시간 마저 짧으니 용기를 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행성에 있는 듯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것을 훨씬 앞서 나가는 것 같다. 고작 8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는 나를 전율케 했다. 잠시도 협조 안 되고 안겨만 있으려던 하던 필리핀 때와 다르게, 아이는 깜찍한 사진 포즈도 취하며 엄마를 흡족하게 한다. 여행의 난이도가 달라졌다. (24개월 이후부터 항공료를 받는 이유를 알겠다!)

사진도 찍어주시고 새삼 아리가또 데스..


료칸도 고,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는 사파리에 가서 사자에게 주던 먹이를 야생 독수리에게 빼앗겨도 보고, 호빵맨 테마파크와 실바니안 가든도 가준다. 어른들도 폭식을 즐기며 만족했지만... 여행 3일 차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다. 전철을 탈 기력조차 없어 먼 거리를 택시로 이동한다. 그제야 남편의 부재를 실감한다. 8살이 많은 선배는 나의 th레기 체력에 조금 당황한다.


3. 필리핀 재도전, 베이비시터 성공해야 해...

 -만 4살


아이는 유치원을 다닌다. 해외로 이제야 데려갈 만하다. 계속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하는 게 좀 신경 쓰였지만 나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낙관한다. 껌딱지 시기는 그래도 지났으니 베이비시터의 역할을 기대해 봄 직했다. 물놀이+모래놀이 조합으로 아이 힘을 빼주면 모든 게 수월할 것 같았다. 카페와 블로그 검색을 통해 후기로 검증된 시터 예약에 성공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학수고대한 시터는 막상 아이의 호감을 끌지 못했다. 아이는 시터의 폭발적인 관심을 거부했다. 그녀의 돌봄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필사적인 면이 있었다. 그것이 아이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게 한 이유가 됐지만 불만의 이유도 될 수 없었다. 남편은 일이 없어 집에만 있고 먹여야 할 아이는 많았다. 한국인을 상대로 시터 일을 하기 전까지 생활이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듬성듬성 빠진 치아의 빈자리를 기꺼이 드러내는 함박미소에 빠진 것은 아이가 아닌 나였다.


호기롭게 책을 들었다가 얼마 안 가 유튜브나 보며 낄낄 거리겠다는 휴가계획은 절반만 성공했다. 혼자의 시간이 있긴 했지만, 30분 단위의 부름으로 인해 단속적 형태로만 주어졌다. 아이는 책 스토리에 몰입하거나 막 잠들려는 순간에 귀신같이 나를 불러댔다. 쉰 것 같기도 하고 안 쉰 것 같기도 한 아리까리한 여행이었다. 교훈의 필리핀은 또다시 가르침을 줬으니... 그것은 애가 좀 크면 아이를 휘어잡는 키즈클럽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지칠 때까지 놀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4. 이제 너는 친구가 필요하구나 - 초등 2학년


세 번째 여행을 마치고 한 달쯤 지나 코로나로 국경이 폐쇄됐다.(여행강행은 신의 한 수였다.) 다시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탔을 때 아이는 초등학생이 버렸.


이번에는 태국 푸껫이었다. 키즈클럽 같은 엔터테인먼트가 잘 돼 있는 숙소 두 곳을 골라 3일씩 묵었다. 그런 요소를 찾는다면 동남아 중 태국이 단연코 최적의 장소다. 태국은 시간이 한땀 한땀 수놓은 관광 인프라를 갖춘 나라다. 일찍이 휴양지로 개발된 만큼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원만한 시스템이 정착됐. 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 편이다. 조금 해져도 문제 될 것 없다는 터줏대감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아이는 여행을 즐겼다. 드디어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여행이 이뤄졌다. 여행 전반의 결재권자인 내 덕이라고 공치사하고  싶지만.. 진실은 우연에 의해 만족도가 결정된 것에 가깝다. 호텔 시설  자체보다는 호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에 의해 아이의 호감도가 좌우됐다. 아이는 1살 많은 한국 언니와 재미있게 놀았기 '때문에' 첫 번째 호텔이 더 좋았다고 다.


아이와의 해외여행은 뭔가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겼다. 아이가 어릴 때는 고생만 하다 온 것 같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가족과 오붓이 보내는 느낌에서 멀어진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말이냐는 것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완전한 여행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완벽한 인생이 없는 것처럼.


불만족의 근원은 욕심에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휴식은 취하되 아이와도 찐~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둘은 양립불가능한 목표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여행에서만큼은 완벽한 서칭과 준비를 통해 필연적 실패를 대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눈이 빠질 때까지 온갖 후기를 섭렵하고 끝 모를 항공-호텔 조합을 생각해 내며 이 싸움에서 이기려 한다.(여행을 싸움으로 둔갑시키는 열정은 왜 이때만 발휘되는가)


그렇게 며칠 날밤을 새고 나온 후보군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이동시간, 예산, 편의를 고려하면 모두들 가는 여행지밖에 안 남는다. 아니, 여러 방면의 여유가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은 수영장과 미끄럼틀, 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보편적인 맛의 식당을 벗어나기 힘들다. 푸껫, 다낭, 하와이, 몰디브.. 그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형성의 극치다.


아이와 해외여행..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에 대한 답은 "되는 대로"가 될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해도, 안 해도 후회는 뒤따르게 마련이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추억을 남겨야 할 것 같아 떠났음에도 뭔가 애매하고 머무르지 못해 붕 떠있는 느낌이 해결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는 뭐라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아 숙제를 덜 마친 기분이다.


너무 애쓰거나 의미 부여하지 않고 대충 설렁 갔다 운 좋고 시절이 맞으면 인생의 추억을 만들고, 아니면 어차피 가는 휴가 적당히 때웠다 생각하면 될 일이기도 한데...

그게 쉽지 않다. 일단 애 데리고 외국 가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부터 힘들고 (어릴수록 더욱) 휴가 내서 일정 조율하고 체력을 갈아 넣고 비용을 들이는 게 갈수록 버겁다. 힘들 게 간만큼 무언가를 얻어오고 싶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지난달 예정했던 태국여행을 항공 수수료 50만 원을 내고 취소했다는 얘기이다. 애 셋을 데리고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마음의 문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이게 아니란 걸 처음부터 알고,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취소수수료를 물 때까지 고민하는 게 바로 애 데리고 가는 해외여행이다. 한때 인생을 여행으로 채우려 했던 꿈이 다 꿈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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