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손 Sep 22. 2024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들 특징 (3)

삶의 긴 여정에서는 누구나 크고 작은 '위기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상황의 발생은 회사 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아무리 사전 대비를 잘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곰곰이 복기해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할 것인지'와 '발생된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회사에서 성공 및 장수(?)했던 리더들은 예외 없이 위기 상황에서도 생존 해법을 찾아냈었는데,

그들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은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자세(Attitude)'였다.

      

내가 회사에 근무했을 때 잘 알고 지냈던 A 공장장님은, 10년 이상 임원직을 수행하면서 산전수전의 경험을

통해 여러 유형의 위기를 잘 극복했었고 많은 임직원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았던 성실한 분이셨다.  

최근에 퇴임하신 A와 편하게 담소를 나눌 기회가 생긴 나는 '회사 생활 중 가장 위기로 느꼈던 사례와 해법'을 주제로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일부 내용은 지금 젊은 세대의 감성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다.


A는 회사 생활 중, 조직이나 인사 관점에서 가장 위기로 느꼈던 것은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 건'이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상사의 언어폭력'이었다고 했다.

      

먼저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을 왜 위기로 느꼈는지? 질문하자 A는 먼저 공장 이전의 배경과 고심했던 포인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시 우리 사업부에는 제조 공장이 국내에 한 군데뿐이었는데, 갑자기 경영진에서

'제조원가 절감을 위해 해외로 공장 이전'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고, 특이하게 이전할 장소로 중국 내 특정

공장을 검토대상으로 권고했어요. 배경을 알아보니 타 사업부가 운영하던 해당 공장은,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폐쇄 과정에서 발생될 많은 노사문제 및 기존 설비의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공장의 진출이 필요했고 그 대상으로 우리 공장을 지목한 거죠. 제가 가장 고심했던 것은, 국내 공장의 생산을 100% 이전할 경우 기존에 근무 중인 수백 명의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할 텐데 이 생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제조원가 절감을 위해 어차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면, 중국보다 더 제조 가공비의 경쟁력이 높은 거점을 찾아 이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였어요."

          

나는 A에게 당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문제점들을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A는 눈을 반짝거리며 "유민 씨, 제일 중요한 것은 같이 일했던 직원들 일터를 계속 유지시킬 명분을 찾으면서

동시에 제조원가도 절감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를 찾는 거였어요. 


첫 번째, 수십 년을 가족처럼 지낸 직원들의 생계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최소한 회사의 손익 문제와 동등 

이상관점에서 검토 및 해결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국내 생산품 중, 기술적인 보안이 필요한 핵심 제품의 중국 이전은 안된다는 것과 Mother Factory의 국내 운영을 통한 해외 공장의 단계적 이전과 확장에 대한 논리 세웠고 이를 끝까지 관철시켰어요.

대신, 수주량에 비례하여 외주 생산을 주로 했었던 제품들에 대해서는 해외 이전을 즉시 실행했었어요.

결론적으로 70% 정도의 기존 직원들은 계속 국내 공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나머지 30%는 다른 사업부  공장에 부탁하고 업무 전배를 시켜 생계 문제에 관한 Risk를 최소화할 있었어요.   

  

두 번째, 경영진에서 권고한 사항과 별개로, 중국과 다른 동남아 지역들의 제조 가공비와 물류, 노사 Risk 등 여러 요인들을 비교하여 시뮬레이션을 했었는데, 최종 베트남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국가로 확인되었어요. 

제가 고심했던 사항은, 경영진의 권고와 다른 제조거점을 보고할 경우, 제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었어요. 

물론 그림에서 보면, 회사 내 해외 공장들의 Global Operation 전략이나 사업부 간 정무적인 조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업부 제조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Fact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죠. 

판단은 다음 문제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공비와 관련하여 검증된 숫자들을 제시하며 베트남으로

제조 거점을 확대해야 할 타당성을 경영진에 보고했어요.  

처음에 경영진들은 당황했어요. 정답을 미리 알려줬는데 다른 답을 보고했으니 당연히 보고는 반려되었지요.

결국 수차례의 검토와 보고가 후속으로 진행되었는데, '현재 단계에서는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

최선이고, 이후 생산량이 더 증가된다면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을 추가 검토한다'라고 경영진은 최종 의사

결정을 했어요. 그 결과로, 국내에서 생산하던 제품의 일부는 중국 공장에서 4년간 생산을 계속했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공장 제조 가공비의 문제점은 계속 제기되었고 중국 공장은 결국 폐쇄되었어요.

물론, 중국 공장으로 이전을 권고했던 기존 경영진도 퇴임한 상태였지요. 

최종적으로 저는 다시 베트남에 공장을 만들어 제조 가공비를 절감하면서 신규로 수주된 제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생산했죠. 그리고 국내 공장도 Mother Factory로서의 기능과 인력을 계속 유지를 했었고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A가 결정했던 '국내 생산인력 유지나 경영진 권유에 반대하는 Fact 보고' 과정에서 A가 느꼈던 솔직한 심정에 대해 직접 물어보았다. A는 약간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내저으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공장 이전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면서 여러 형태의 두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먼저, 국내 생산 인력을

유지하는 건은 직원들의 생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제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문제도 없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해외공장 이전과 관련된 보고 과정에서 경영자에게 매번 잔혹할 만큼 많은 질문을 받고 준비 과정의 시행착오를 지적당하는 과정에서 장시간 인격모독과 같은 언어폭력을 받았던 것이었어요.

때로는 경영자가 보고서를 제 얼굴에 던지며, 당장 사표 내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해외로 공장 이전을 해 본 경험이 없었던 제가 모르는 것이 많아서 원인 제공을 했을 수 있다고도 생각

했고 경영진이 원했던 정답이 아닌 보고를 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폭력이 1년 이상

지속되자 저는 깊은 심리적 상처받았습니다.   

그래서 심리 상담사를 별도로 수차례 만나 문제를 면담했었는데,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상담사 이야기는

'회사에서 그 경영자에게 절대 그렇게 욕할 권한을 주지 않았다. 그 x에게 문제가 있다'였고, 그 순간에 제가 깨달은 것은 '잃을 것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다'라는 단순한 사실이었어요. 즉, 회사와의 계약만 끝나면 그 x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두려울 필요도 없는 거죠. 그리고 그 x 역시 본인의 상사인 대표이사를 가장 두려워

하고 그 앞에서는 항상 양처럼 순하다는 것을 기억해 냈어요. 이후에 저는 대표이사를 포함시켜 공장 이전 건을 직접 보고하기 시작했었고, 놀라운 점은 더 이상 그 x과 충돌과정 없이 빠르게 모든 의사결정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x과는 한동안 더 같이 근무했었는데, 대표이사 때문인지 그 이상의 다른 악연은 없었어요. 되돌아보면, 죽을 만큼 두려웠던 과거 어떤 순간도 지금은 하찮게 조각난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있을 뿐이고, 제 자신이 당당하게 결정을 했던 모든 순간들은 항상 반짝거리며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A는 이러한 과거 회상을 하면서 조금은 고통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왜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언어 폭력과 

같은 못된 악습들이 근절되지 않을까요?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해 보았다.

A는 "유민 씨, 우리는 어려서부터 잘못된 서열 문화나 꼰대 사상과 같은 과거의 악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가해자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에요. 앞서 언급한 그 경영자의 언어폭력 문제도 여러 임직원들이 회사 측에 

많은 제보를 했었지만 어떤 처벌도 없었어요. 그래서 당한 사람들은 점차 포기를 하는 거죠. 

문제는 회사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 사회 전반에서 깨어있는 모든 사람들이 계속 이슈화해야 해요. 

그리고 파급력이 큰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해서도 계속 사례를 예시하며 사회운동으로서 계몽해 가야죠."

 

A와 대화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A와 같은 회사를 다녔으면서도 그가 내밀하게 겪었던 수없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공장 이전과 같은 위기 상황을 대면했을 때 가장 먼저 직원들에 대한 배려를 생각했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Fact를 기반으로 경영진에 올바른 보고를 했던 용기 있는 분이라는 점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성품 때문에 A는 오랜 기간 임원생활을 영위하였고 많은 임직원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퇴임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많이 펼치시기를 기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독서가 삶에 미치는 영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