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걍갈 Sep 25. 2024

[리뷰] 나는 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시뮬라시옹

여행자 극장 연극 <시뮬라시옹> 후기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는 9월 4일부터 15일까지 성북구 여행자극장에서 SF 로맨스 연극 <시뮬라시옹>을 선보였다. 연극의 제목인 ‘시뮬라시옹’은 1981년 장 보드리야르가 발표한 시뮬라시옹 이론에서 차용해온 말로써 ‘모사된 이미지가 실제를 대체하고, 실제가 아닌 것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뜻한다. 연극에서 시뮬라시옹은 벤처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명이다. 시뮬라시옹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과 반려동물을 재현하며 요청 제작자와 상호작용을 한다. 모사된 이미지가 실제를 대체한다는 것은, 무엇이 실제이냐는 인간의 문제로 전환된다.


연극의 시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가까운 미래인 2034년 주인공 선욱은 2년 전 자율주행 비행기 사고로 아내 상아와 사별했다. 어트랙션 엔지니어인 선옥은 한 벤처 기업이 개발한 ‘시뮬라시옹’ 프로그램을 통해 상아를 만나게 되고, 이는 그의 일상에 깊게 스며들게 된다. 한편, 프로그램 속 상아는 딥 러닝 기술을 통해 감정과 경험이 누적되어 가고 선욱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나는 무엇으로 내가 되는가


전상아님을 AI기술로 복원하기 위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전상아님의 디지털 기기가 있다면 저와 연결해주십시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상아님을 복원하겠습니다.

.

자료들을 스캐닝을 해주세요.

.

프로젝션이 완료되었습니다.

.

시뮬라시옹 프로그램에 만족하실까요?



내가 사용하던 핸드폰과 노트북, 끄적인 노트와 다이어리, 사진과 각종 애장품은 나에 대한 정보 값이 된다. AI는 그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생명 추측 값을 직조해 낸다. 그런 의문이 든다. 나에 대한 데이터를 모두 합하면 그것이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은 요소들의 집합체인가. 그렇다면 나라는 인간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 복제는 국제적으로 범죄이다. 이는 인간 복제를 할 과학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복제된다면 우리가 인간에 대한 정의와 윤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해 이것들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인간을 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죽은 사람을 데이터로 구현한다는 것이 던지는 질문은 복잡하다. 데이터의 총합이 인간이 될 수 없다면 동시에 데이터의 총합이 인간 아닌 것도 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선욱의 직업은 어트랙션 엔지니어이다. 놀이공원은 사람들에게 예외의 공간이다. 현란한 불빛과 동화적인 이미지들, 들뜸과 설렘의 공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짜가 아니라 환상의 공간이 되는 곳. 하지만 선옥에게 놀이공원과 어트랙션은 업무일 뿐이다. 선옥은 모두가 들뜨고 유쾌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웃지 않는 사람이다. 이러한 선옥과 놀이공원의 관계는 선옥과 상아의 관계와 닮아있다. 


선욱는 처음 시뮬라시옹 프로그램에 상아의 추상 정보를 입력할 때 그녀를 자신과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침착하고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자신과 달리 상아는 매사 도전을 멈추지 않고 통통 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상아는 무채색 옷을 입는 선욱과 달리 색채가 화려한 옷을 입는다. 이러한 상아는 선욱이 일하는 놀이공원을 선욱보다, 선욱과는 달리 좋아한다.


선욱이 아는 상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시뮬라시옹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뛰어넘는 프로그램 구현은 불가능하다. 딥러닝을 통해 자체적인 정보 값을 축적해 가긴 하지만 정확도와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최초 정보 값이 필요하다. 초반 추상 정보와 몇 가지 자료만 넣었을 때의 상아는 일종의 조증 상태처럼 보였다. 선욱이 기억하는 상아의 좋은 점이 극도로 구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선욱은 ‘더 진짜 같은’ 상아를 바라게 된다. 마카롱을 굽고 피아노를 치는 상아는 분명 상아의 모습이지만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노트북과 핸드폰 등을 추가로 제출하고 상아는 ‘더 진짜 같은’ 상태가 되지만, 선욱은 그러한 상아와 마찰을 빚게 된다.


상아는 더 이상 밝은 옷을 입지 않으며, 선욱과의 관계에서 병들어 갔던 자신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한다. 감정이 누적되어 감에 따라 선욱이 기억했던 밝은 상아의 모습은 사라진다. 선욱은 ‘더 진짜 같은’ 상아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선택을 한다. 선욱은 상아를 사랑한 것이 맞을까. 선욱이 사랑한 상아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조건 없는’이라는 조건을 붙여보곤 한다.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우리는 그렇듯 헌신적인 조건 없는 사랑을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상아는 더욱 진짜 같아졌지만 선욱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상아가 아니었다. 선욱은 살아있을 때의 상아와 데이터화된 상아 모두와 불화한다. 자신이 놓쳤던 것들을 죽음 전과 후 모두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극은 마무리된다.


가짜와 진짜, 그리고 오늘


SF 창작물은 가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가장 현재적인 창작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은 역설적으로 무던하고, 그것을 다른 차원으로 던졌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맹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상의 조건과 세계 인물이 던지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미 맞닥뜨린 문제들이다. 연극 <시뮬라시옹>은 인간에 대해 사랑과 상실에 대해, 그리하여 우리의 존엄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연극이 끝나고 남는 어딘지 모르겠는 찜찜함은 SF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오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948

작가의 이전글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2024)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