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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tbrush Sep 24. 2024

작가노트 02

한국화란 무엇일까에 대한 단상

장병언


 어떤 이는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우리의 산천을 우리의 시각으로 그려낸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이 땅을 지켜온 민중들의 애환과 소망을 담은 '민화'야 말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 말한다. 또 누군가는 지나간 옛것보다 동시대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과 이중섭 같은 화가의 그림을 한국적이라 평한다. 모두 다 옳은 말이다. 이렇듯 어떤 그림이 한국적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한국화'라는 개념은 개개인의 취향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한국화'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이곽파 화풍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으며, 중국의 남종화풍을 우리 것으로 승화시켜 '실경산수'와 '진경산수'가 태동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를 거쳐오면서 동양회화가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특수성이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필법과 묵법이다. 더구나 필법과 묵법은 동양회화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성을 내포한다. 표현에 있어 서도 동양회화는 선이 기본이기 때문에 선의 강약, 빠르고 느림 등의 변화가 그림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붓 훈련이 필요하다. 붓 훈련을 하지 않으면 필력이 없고, 필력이 없으면 그림 전체의 흐르는 기운이 약해지게 된다.


 그다음 한국화가가 갖추어야 할 자세가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옛 문화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야 각양각색 이겠지만 '한국화가'를 표방한다면 한국의 문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취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천 년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미의식이 어떠했고, 어떤 것들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박생광은 작고하기 전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 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한국화가'가 마땅히 간직하고 곱씹어봐야 할 명언이다.



 작년, 미국의 한 매체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한국영화는 20년간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왜 오스카 후보상에 단 한 작품도 오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오스카는 로컬(지역시상식)이기 때문이다'라고 일침을 날린다. 미국 최고의 권위를 가졌으나 그들 스스로 장벽을 쳐 놓고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한국화가'를 지향하는 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아끼듯이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도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이다. 한국의 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다른 문화를 배척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일침은 아카데미시상식이 아니라 '한국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할 것이다. 한국화라는 프레임을 붙임으로 해서 우리 스스로 로컬(지역)적 미술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한국화의 개념 그리고 자칫 한국화가 로컬화 되어 버릴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두서는 없지만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화가'가 아닌 '예술가'로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행동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도한 자유를 표방하면 전통을 잃어버리고 전통을 고수하다 보면 과거에 매몰되어 버리는 이 두 가지의 태도를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지점이 정말로 난제다. 전통은 유능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화가에게는 새로운 창작을 움트게 해주는 밀 거름이 될 것이고, 무능하고 게으른 화가에게는 전통은 거추장스럽고 새로운 창작에 방해가 되는 성가신 존재로 인식될 것이다. 어찌 됐던 지금까지의 노력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의 행위가 사회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되길 바랄 뿐이다.


2020 장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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