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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 독자 May 28. 2024

바루사를 타고 해변으로 가요!

4월 5일 화요일, 우로스 섬에서 아만타니 섬을 향하며


  갈대를 이어 만든 이색적인 배에 올랐다. 배의 이름은 '바루사'. '바루사'는 티티카카 호수에 사는 우로스 섬사람들의 전통 방식대로 호수에서 자라는 '토토라'라는 갈대를 엮어 만든 배다. 배는 몹시 탄탄하고 정교해서 도무지 갈대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배의 선두에는 퓨마의 머리 장식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 퓨마는 내가 알던 퓨마보다 훨씬 더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퓨마의 호수'를 뜻하는 '티티카카' 호수의 이름에 걸맞은 모양새였다.


  티티카카 호수를 가르는 이 여정에는 나와 독일 여자 한 명,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남자 둘이 관광객으로 탔다. 우로스 섬에서 아만타니 섬까지는 바루사로 세 시간이 걸린다. 배는 노를 저어 가는 방식이었는데, 우로스의 여인 둘이 선두에 서서 노를 저었다. 완벽한 수동이었다. 거기에 우로스의 꼬마 아이 두 명이 함께 배에 올랐다. 아마 그들의 딸인 듯싶었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은 배가 출발하자 사이좋게 뱃머리에 앉아 이런저런 노래를 불렀다.


  동요 같기도 하고 민요 같기도 한 노래들이었다. 좋은 말로 해서는 느리게 가고, 정확히 말하자면 더디게 가는 바루사를 타고 가는 여행길. 티티카카 호수를 가르는 이 길이 아이들에겐 제법 심심할 법도 했다. 그래서 둘이 나란히 앉아 노래라도 부르며 가는구나 싶었다.

  

  "Vamos a la playa! oh oh oh oh~"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다 이 구절이 이어질 때였다. <해변으로 가요!> 라는 이 노랫말이 나오자 옆에 있던 스페인 남자들의 떼창이 함께했다. 스페인어 국가에서는 매우 유명한 노래인 듯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아이들은 두 손을 좌 우로 흔들었는데, 스페인에서 온 두 명의 남자들도 그 율동을 따라 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양 신이 난 몸짓으로 함께 노래 불렀다.


  아이들은 관광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 광경이 제법 익숙한지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를 계속 이어갔다. "Vamos a la playa!"라는 단순하고 귀여운 노랫말이 반복되었다. 티티카카 호수에서 해변으로 가려면 얼마나 먼 여정을 떠나야 하는 걸까. 퍽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노랫말 만큼은 그저 경쾌했다. 바다같이 넓고 넓은 호수를 건너는 이 길에 꽤나 잘 어울리는 노랫말이었다.


  노래를 모르는 나와 독일 여자도 분위기에 따라 손을 흔드는 율동을 함께했다. 우리는 다같은 단순한 동작으로 리듬을 타며 즐거웠다. 마치 다시 어린이가 된 듯한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이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쓰고 있던 모자를 뒤집어 우리 앞에 차례로 돌리기 전까지는.......


  수금이었다. 관광업이 주요 산업이 되어버린 우로스의 사람들. 앞서 방문한 우로스 섬 또한 진짜 섬이 아니다. 우로스 섬은 우리가 타고 있는 바루사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갈대를 엮어 만든 인공섬'이다. 처음 우로스섬을 보았을 때에는 그 압도적인 비주얼에 놀랐다. 이어서 티티카카 호수의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택한 대단히 특별한 생활 방식이라는 생각에 감탄했다.


  그러나 실제 발을 디딘 우로스 섬의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이 보여준 티티카카 호수에서의 삶은 더 이상 환경의 굴레를 벗 삼아 살아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일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보여주기용 목적이 더 큰 듯했다. 그들은 토토라를 엮어 만든 이색적인 그들의 집에 우리를 초대해 '기념품'을 사게 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간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들의 가족과 불우한 일상을 끼워 팔았다. 그렇다. 나는 그들의 집에 방문한 손님이 아닌 수입원이었다. 이처럼 관광객을 통한 관광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로스 사람들의 주요한 생활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란다.


  그러나 아이들의 순수한 노랫말 또한 이 관광 패키지에 포함된 것일 줄이야. 


  그들의 노랫소리에 밝아졌던 마음이 이내 어두워졌다. 당장의 돈을 주는 것, 그건 일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게 이들에게는 생활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모자가 내게 온 순간, 동전 한 푼 보다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다른 것들이 여의치 않았다. 나 역시 그들이 원하는 돈을 모자에 넣어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한 번씩 꼭 안아주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돈, 즉, 생계와 직결되는 우로스의 아이들. 순수한 미소가 1 솔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오롯이 행복하고 순수할 수 있을까? 이건 비단 여기 페루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닐 테다. 어린이들이 어린이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해변으로 가요!>라는 발랄한 노랫말이 가슴속에 저릿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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