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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력가노루 Aug 19. 2024

::: 샤대 돈으로 4개국 체류하기 <4>

프랑스편


프랑스어 초보 주제에 중급반에 들어온 노노루.


선생님은 말도 엄청 빠르신 데다 조금 깐깐하신 편이었고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대부분 유럽계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흑인 수녀님) 엄청나게 말을 잘해서 충격이었다.

대체로 회화에서는 수준이 높지만, 그나마 문법이 조금 약해서 이 반으로 온 사람들이 대다수.

선생님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질문하고 대답하고 농담 따먹기 하는 수준…

나름 제2외국어라고 고딩 때부터 배워온 문법 덕분에 야매로 이곳에 들어온 노노루를 보면 알겠지만

확실히 한국의 외국어 교육은 ‘의사소통’이 아닌 ‘학문’에 맞춰져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노노루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그나마 수업을 쫓아가면 그걸로 다행…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 바득바득 온 집중력을 다해 이해하려고 하다보니 금방 탈진, 정신이 혼미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원어민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맞춰 하향평준화(?)가 되었던 꽃밭 같은 곳을 뒤로하고

지금 여기는 황량한 허허벌판…


그런 노노루의 단비 같은 사람은 일본사람 마이코 상이었다.

내 구세주!!!

어떻게든 저 여자분을 붙잡아 최대한 빌붙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뿐.

다행히 노노루는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당시 JLPT 2급)

처음에 말을 걸었더니 반갑다고 살갑게 대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수업을 못 따라갈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곤 했는데

많이 귀찮았을 텐데도 단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았던 친절한 마이코 상…


실력이 부족해 내내 허덕여도 여기까지 온 김에 제대로 뽕 뽑아보자고 버티고 버텼는데

오후 말하기 그룹 스터디에서 같은 조로 만난 미국 아이들이 주는 압박감에 K.O.

초반엔 프랑스어로 말하다가 나중엔 본인들도 답답한지 영어로 쏼라쏼라.

프랑스어도, 영어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난 아마 반을 바꾸게 될 거라 너희들과 같이 조 활동을 할 수 없어”라는 말을

가까스로 전하는 처지가 한없이 주눅 들게 만들었다.


일주일 뒤 결국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하고 초급반으로 옮긴 노노루.

초열공모드를 포기하는 게 아쉬웠지만 마음은 어찌나 편하던지!

새로운 반에는 함께 프랑스어 입문 3을 듣는 샤대 사람들이 있고

선생님도 나긋나긋하셔서 아주 만족했다.


3주 후 마지막 수업 때 그동안의 고마움을 담아 캐리커처와 함께 짧은 편지를 선물로 드렸는데

프랑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쥬(프랑스식 볼 뽀뽀)를 받았다.

고맙다고 양팔을 벌리며 다가오길래 포옹을 하는 줄 알았는데

순간 “쪽” 하는 소리에 얼음이 될 뻔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반대쪽도 “쪽”한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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