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은희경의 첫 장편 《새의 선물》(1995)은 제1회 문학동네상 수상작이며, 2022년 100쇄 기념 개정판이 나올 만큼 널리 읽혀 온 작품입니다.
본문은 1969년, 열두 살 소녀 강진희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어른 진희 모습이 이를 감싸며 액자식으로 완성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어린 진희의 시선 속에서 어른 진희를 미리 엿보게 되고, 마지막에 이 대비가 다시 한 번 강조되면서 주제의식이 선명해집니다.
1969년의 남성 중심 사회를 배경으로, 작품은 여성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세웁니다. 진희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이들의 사연이 한 화씩 닫히는 에피소드 구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장치가 되고, 이 덕분에 1969년의 풍경이 생생하게 읽힙니다.
여러 세입자 가운데 ‘장군이 엄마’와 ‘광진테라 아줌마’는 특히 진희와 깊게 얽히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들이 본명 대신 관계로 불린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남성 인물들 역시 배제되지 않고 진희와 주변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진희는 어린아이처럼 보이지만 또래를 넘어서는 분별로 어른들의 선택을 읽어냅니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태도와 조숙함·서늘함 사이의 간격이 작품의 독특한 긴장을 만듭니다. 어떤 에피소드는 제목 한 줄로 화자의 세계관을 번쩍 드러내기도 하지요.
진희의 배경에는 어머니의 죽음과 부재한 아버지의 빈자리도 있습니다. 조손가정 안의 사랑과, 바깥에서의 냉대가 교차하는 환경 속에서 진희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가르는 듯한 태도로 자신을 다잡습니다.
많은 이들이 《새의 선물》을 성장소설로 읽지만, 책을 덮고 나면 성숙과 성장이 언제나 같은 말은 아닐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1969년의 일상과 1995년의 시선이 맞물리고, 아이의 문장으로 들려주는 어른의 통찰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신선한 울림을 줍니다.
에필로그의 한 문장, 진희의 독백은 자신의 삶과 소설의 세계를 조용히 압축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새의 선물·에필로그·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