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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Jun 18. 2024

몸 기(己)에서 파생된 한자들

벼리, 일어남, 기록 등

지난 글에서 살펴본 한자들은 몸 기(己)나 꼬리 파(巴)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꿇어 엎드린 사람을 본뜬 병부 절(卩)에서 파생된 한자였다. 그렇다면 진짜로 몸 기(己)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己의 자원부터 살펴보자.

몸 기(己)의 서로 다른 두 갑골문. 출처: 小學堂

己는 갑골문에서도 나오는 오래된 한자로, 지금처럼 ㄹ자 모양으로 쓰기도 하고 이걸 좌우로 뒤집은 각진 2자 모양으로 긋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한 형태라서 대체 이게 뭘 본뜬 것인지는 현재까지는 정설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갑골문에서 己를 포함하고 있는 글자들이 있는데, 아니 불(弗)과 아자비 숙(叔)이다. 弗은 지금은 弓(활 궁)이 들어가 있지만 갑골문에서는 己가 들어가 있고, 갑골문에서 弓은 己와는 꽤나 다른 모양이었다. 叔은 갑골문에서는 끈으로 묶은 화살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수렵 도구로 짐작되고 있다.

아니 불(弗)과 아자비 숙(熟)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과 甲骨文硏究网.

이에서 나온 유력한 己의 자원은 弗과 叔과 마찬가지로 己도 실에서 따온 글자로, 실이나 새끼줄로 무엇을 묶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맨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己는 원래는 紀(벼리 기)를 나타낸 한자다.

또 다른 소수설은 疇(이랑 주)와 관련이 있다. 疇는 지금은 田(밭 전)이 뜻을 나타내고 壽(목숨 수)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지금처럼 복잡한 형태가 아니었다. 疇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다.

疇(이랑 주)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가운데 들어가는 네모꼴은 田으로 쓰기도 하며, 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이 밭을 己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 己는 밭 사이로 물길을 낸 것으로 埂(작은 구덩이 갱)의 본자로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한 줄로 죽 이어진 己자를 살펴봤는데,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모양도 있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별의별 희한한 옛 문자를 긁어모았는데, 己의 고문도 전국시대 도장에서 비슷한 모양이 있는 걸 보면 그의 성실하고 끈질긴 노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己의 전국시대 제나라 도장에서 발견된 형태와, 설문해자에 수록된 고문. 출처: 小學堂

어쨌든 己는 갑골문에서도 상형문자의 뜻으로 쓰이는 예가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갑골문에서는 여섯째 천간, 정인(점술가)의 이름, 상나라의 묘호로 쓰였다. '자기', '몸'의 뜻은 나중에 가차한 것이다.

己에서 파생된 글자들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글자 중 쓰임이 있는 파생자가 9자로 가장 많다. 그만큼 다중 파생된 글자들도 많으나 공교롭게도 현대 한국어에는 쓸 일이 없는 글자들이어서 여기에 소개하지 못했다.

己(몸/여섯째천간 기):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자기(自己) 등. 어문회 준5급

屺(민둥산 기): 자기(慈屺), 척호척기(陟岵陟屺) 등. 어문회 특급  

忌(꺼릴 기): 기피(忌避), 금기(禁忌) 등. 어문회 3급  

改(고칠 개): 개혁(改革), 재개(再改) 등. 어문회 5급  

杞(구기자 기): 구기자(枸杞子), 기우(杞憂) 등. 어문회 1급  

玘(패옥 기): 팽기(彭玘), 황기환(黃玘煥) 등. 어문회 준특급  

紀(벼리 기): 기강(紀綱), 세기(世紀) 등. 어문회 4급  

芑(흰차조 기): 이기(李芑) 등. 어문회 특급

記(기록할 기): 기록(記錄), 일기(日記) 등. 어문회 준7급

起(일어날 기): 기상(起牀), 발기(勃起) 등. 어문회 준4급

己(몸 기)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이 중에서 改와 起는 원래는 己에서 파생된 글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 改는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巳+攵의 형태만 있을 뿐이지 改로는 쓰이지 않았다.

왼쪽부터 고칠 개(改)의 갑골문, 금문과 두 가지 다른 소전(巳, 己)의 해서화.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두 가지 다른 改의 소전을 다 수록하고, 서로 다르게 풀이했다. 改는 '고치다'의 뜻으로, 巳+攵은 '퇴마용 물건'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巳+攵의 형태로 쓰고 뜻은 '고치다'로 쓰고 있다. 이 글자를 곽말약은 자식을 쳐서 징계해 '고치다'의 뜻으로 풀이했다. 巳는 갑골문에서는 子와 거의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진옥은 원래부터 두 글자가 따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회의자인 改를 완전한 형성자로 바뀌면서 巳 대신 己로 바뀐 것 같다. 한편 고대 사회의 애니미즘에 비추어 한자를 풀이하는 시라카와 시즈카는 뱀을 치는 주술로 '고치다'의 뜻으로 풀이했고, 설문해자의 '퇴마용 물건'의 뜻은 그게 그대로 남은 것으로 보았다.

起도 改처럼 走(달릴 주)와 巳가 결합한 글자가 많으나, 己가 결합한 글자도 적지 않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起의 전국시대 연나라 문자, 설문해자 고문,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 2가지. 아래는 위 글자를 해서 형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글리프위키

起는 전국시대부터 출현하며, 지금처럼 走를 의부로 쓰기도 하고 走 대신 辵(쉬엄쉬엄 갈 착)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성부 2가지, 의부 2가지 합해서 가능한 조합이 4가지다. 위 예에서는 공교롭게도 초나라 문자에서만 성부를 己로 썼는데, 또 다른 초나라 계통 출토문헌인 《계년》에서는 巳를 쓰기도 한다. 起 역시 改처럼 원래는 己가 아닌 巳가 들어가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한편 己의 옛 다른 형태에는 口가 아래에 들어가는 글자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글자를 만들었을까, 口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싶다. 여기에 辵을 덧붙여서 起의 또 다른 변형을 만들어냈으니 그냥 이유 없이 붙인 것 같지는 않고 실제로 사용한 글자라는 것은 명백하다.

왼쪽 위부터 口가 들어가는 己와 起의 이체자, 아래는 위를 해서화한 것. 출처: 小學堂, 글리프위키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의 인물로 논어에서 공자에게 효를 물어보는 것으로 등장하는 중손하기(仲孫何忌)의 이름은 중손기(仲孫己)로 쓰기도 하는데, 이를 보면 己가 忌 대신 쓰이고 있다. 己 역시 己를 성부로 하는 忌 등 다른 글자의 뜻으로 가차해 쓰다가 뜻을 나타내는 적절한 형부가 붙어서 분화한 것일 수도 있겠다.


己는 물건을 묶는 실의 뜻으로 紀(벼리 기)의 본래 형태라는 설이 유력하나, 갑골문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이지 않았고 천간의 뜻으로 쓰였다.

己에서 屺(민둥산 기)·忌(꺼릴 기)·改(고칠 개)·杞(구기자 기)·玘(패옥 기)·紀(벼리 기)·芑(흰차조 기)·記(기록할 기)·起(일어날 기)가 파생되었다.

改와 起는 己 대신 巳(뱀 사)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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