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제사, 빛나다 등
己(몸/여섯째천간 기)에서 유래한 한자들 중에서는 己와 비슷하게 생긴 巳(뱀/여섯째지지 사)에서 유래했다가 巳가 己로 바뀐 한자들이 있었다. 改(고칠 개)와 起(일어날 기). 이 한자들의 음은 巳보단 己에 가깝다. 巳에서 소리를 가져온 한자들은 없을까? 그 한자들과 巳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巳은 지금의 뜻인 뱀이나 여섯째지지로 보면 뜻밖이지만,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갑골문의 형태는 子(아들 자)와 혼용해서 쓰고 있기에 원래는 태아의 뜻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口는 어린이의 머리가 되고 乚은 어린이가 강보에 싸여 묶여 있는 형태로, 子와 비슷하게 해석된다. 실제 갑골문에서 子는 巳와 많이 다른 형태로도 쓰지만, 巳를 子의 뜻으로도 쓰기 때문에 巳를 子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子의 다른 형태는 어린이의 정수리와 머리털을 강조한 그림에서 나왔다.
巳가 원래부터 지금의 뜻인 뱀이었고 저 갑골문도 뱀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태아의 형태를 본떴다는 정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래는 알 속에서 뱀이 발육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口는 뱀의 알을 뜻하고 乚은 발육하는 뱀의 태아를 그린 것이며, 음인 '사'는 알 속에서 보이는 뱀의 핏줄이 실 같다고 '실 사'(絲)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巳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의외로 제사 사(祀)가 준3급으로 꽤 급수가 높고 다른 한자들도 일상생활에서 보기 어려운 글자들이 많다.
巳(뱀/여섯째지지 사): 사시(巳時), 을사늑약(乙巳勒約) 등. 어문회 3급
戺(문지방 사): 계사(階戺), 문사(門戺) 등. 어문회 특급
汜(늪 사): 몽사(蒙汜), 사수(汜水) 등. 어문회 특급
祀(제사 사): 사손(祀孫), 제사(祭祀) 등. 어문회 준3급
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 급수 외 한자
巸에서 파생된 글자는 다음과 같다.
熙(빛날 희): 희광(熙光), 강희자전(康熙字典) 등. 어문회 2급
이 중 巳와 祀와 汜는 지금의 음만 같을 뿐만 아니라 상고음으로도 정장상팡은 ljɯʔ로, 벡스터-사가르 체제에서는 s-ɢəʔ로 같게 추정한다. 급수 외 한자지만 한국 고전에서 은근히 쓰이고 있는 圯(흙다리 이) 역시 설문해자에 수록되어 있는 오래된 글자인데 지금의 음은 巳보단 已(이미 이)에 훨씬 더 가깝지만 상고음으로는 정장상팡은 lɯ로 추정해 已의 상고음인 lɯʔ와 巳의 상고음인 ljɯʔ와 모두 비슷하게 추정했다. 이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상고음으로는 已와 巳가 비슷하며 운모(대략 한 음절에서 초성을 빼고 반모음+모음+받침에 해당)도 같다.
그래서 己, 巳, 已가 모양도 비슷하고 운모도 같다 보니 기원이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위의 巳가 발육하는 뱀 모습이었다는 주장에서는 已는 알을 깨고 나오는 뱀의 모습이라 口가 조금 터진 거고, 己는 완전히 알을 깨고 나온 뱀의 모습이라 口가 완전히 열렸다고 보았다.
갑골문에서도 나타나는 巳의 파생자로는 祀와 汜가 있는데, 그 중 祀의 변천도 살펴보자.
제단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와 巳가 결합한 모습을 상나라 시절부터 지금까지 죽 유지해 오고 있다. 진(晉)계 문자에서는 반원형 장식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골자는 같다. 이 글자는 巳를 사람의 모양으로 보고, 꿇어 앉은 사람을 본뜬 卩과 유사하게 취급해 '제단 앞에 사람이 꿇어 앉아서 제사를 드리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巳와 已의 유사성에 착안해서인지 설문해자에서는 已의 다른 뜻인 '그치다'에 의탁해, '제사가 그치지 않는다'라고 풀이했다. 이 글자는 갑골문에서는 제사의 일종이었다가 조상 제사를 두루 일컫는 단어로 바뀐 것 같다. 그런 한편, 조상 제사를 1년 주기로 돌아가면서 드렸기 때문에 이 글자는 상나라 시대에는는 한 해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쓰였다. 즉 우리가 1년, 2년, 3년... 하면서 햇수를 세는 것을 상나라에서는 1사, 2사, 3사.... 와 같은 식으로 센 것이다.
그런데 설문해자에는 좀 뜬금없는 祀의 이체자가 있다. 바로 巳 대신 異(다를 이)를 쓴 禩다.
異의 음이 已와 비슷하므로 巳→已→異의 변화를 거친 것 같기도 하지만, 정장상팡과 벡스터-사가르는 異의 상고 운모를 職(직분 직)으로 추정했으므로 已와는 달라서 이렇게 보기도 애매하다. 명나라 시기에, 전래되는 고문자들을 수집해서 초본을 낸 것을 전초고문자라고 하는데, 전초고문자에도 수록된 것을 보면 허신의 착오라고 단정하기에도 섣부르다. 한편 전초고문자에는 巳를 己(몸 기)로 바꿔쓴 형태도 있는데, 이를 보면 현대뿐 아니라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도 己와 巳를 헷갈리는 사람이 있던 것 같다.
그리고 熙도 살펴보자. 熙는 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가 소리를 나타내고 火가 뜻을 나타내며 설문해자에서는 불에 말린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실제 예문을 보면 이 뜻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火가 붙기 전 巸에 가까운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금문에는 熙를 쓰지 않고 대신 巸를 쓰기에, 이 巸를 熙로 해석한다. 巸는 頤(턱 이)의 왼쪽 부분(� 이 글자도 턱 이인데, 브런치에선 깨지므로 頤로 대신함)와 巳의 결합으로, 두 글자 모두 운이 같아서 뭘 기준으로 봐도 형성자의 성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巳는 순수하게 소리만 나타낸다고 보며, 설문해자에서는 頤에 주목해 '턱이 넓은 모양'이라고 했는데, 옛날에는 지금과는 달리 턱이 넓은 모습이 아름답다고 봤는지 아름답다는 뜻이 인신되어 나왔다. 나중에 이 인신의를 더 강화하기 위해 불빛을 표현하는 火를 붙여서 '빛나다'는 의미가 되었다.
巸의 옛 형태는 위와 같다. 설문해자의 고문은 아마도 턱 이를 戶(지게 호)와 헷갈린 것 같다. 나머지 문자들은 모두 턱 이와 巳의 결합이다. 저게 턱이라고요? 여자 가슴 아니에요?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게 턱 이의 유력한 자원 중 하나기도 하다.
巳는 갑골문에서는 子와 혼용해 태아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나, 알 속의 뱀 새끼를 본뜬 것이라는 설도 있다.
巳에서 戺(문지방 사)·汜(늪 사)·祀(제사 사)·巸(아름다울 이, 즐거워할 희)가, 巸에서 熙(빛날 희)가 파생되었다.
祀는 제단 앞에 사람이 꿇어 앉은 모습을 본딴 글자며, 옛날에는 제사 주기에서 파생돼 1년을 뜻하기도 했다.
熙는 옛날에는 火(불 화) 없이 巸로 썼으며, 턱이 넓은 모양에서 아름답다, 빛나다의 뜻이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