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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Aug 09. 2024

익힐 습(習)에서 파생된 한자들

접다, 옷주름, 빛나다, 작다

깃 우(羽)처럼 생긴 갑골문이 사실은 빗자루를 나타내는 살별 혜(彗)였다면, 갑골문에 羽처럼 보이는 것이 들어간 한자는 사실 羽가 아닌 彗에서 파생된 것으로 새로 해석해야 한다. 예전에 다룬 꿩 적(翟)도 그 예고, 오늘 다루고자 하는 익힐 습(習)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習은 羽와 白(흰 백)이나 自(스스로 자)가 합한 글자로 해석해 왔다. 《논어》의 첫 구절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 에 이 한자가 들어 있으니 유가에서도 이 한자를 주목했는데, 주자는 이 문장에 나오는 習은 '새가 자주 나는 것'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익힌다는 뜻이 나왔다고 풀이했다. 주자처럼 習의 자원을 羽에서 찾아, 새와 배움을 관련시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해석은 이미  《설문해자》 때 나와 있었다. 허신은 이 한자를 '자주 나는 것이다. 羽에서 뜻을, 白에서 소리를 가져왔다.'라고 풀이했다.


習은 금문에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허신의 해석이 오랫동안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갑골문과 출토 문헌을 연구하면서 習의 자원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習의 변천. 갑골문(a), 전국시대 진(晉)계 문자(b),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c), 설문해자 소전(d), 예서(e). 출처: 小學堂

우선, 習의 아랫부분이 白이나 自가 아니라 日(날 일)로 나오고 있다. 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b처럼 日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c, d, e에서는 自, 白, 目(눈 목)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되고 있다. 그 때문에 후세에서 착오를 일으켰지만, 원형은 日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학자·고고학자 리쉐친은 《자원》에서 習은 羽가 새의 날개란 뜻을, 日이 태양, 창공이라는 뜻을 나타내며 日은 소리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日과 習의 초성 자음이 모두 혀를 이에 대어서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어로는 日에서 초성 자음이 탈락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옛날 한국어에서 日의 초성으로는 소리 없음인 ㅇ이 아니라 반치음 ㅿ을 사용했고, 이 반치음의 유력한 추정 음가는 영어의 z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羽와 彗의 관계가 새로 정립이 된 것을 바탕으로 하면, 이 한자는 彗(살별 혜)와 日이 합한 글자로 보인다. 그러면 이 글자는 지난 시간에 다룬, 日과 彗가 합한 暳(별반짝거릴 혜)와 같은 글자인 걸까?

그렇지 않다. 彗가 들어가는 한자 중에 '햇볕에 말릴 위·울'(熭)이라는 한자가 있다. 彗와 日이 합한 習을 계승한 한자가 이 한자로 보인다. 炳(밝을 병)과 昞(밝을 병)에서 보다시피, 그리고 빛에는 에너지가 있고 이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듯이, 火(불 화)와 日은 부수로서 종종 바꿔 쓸 수 있다. 따라서 習의 원래 의미는 햇볕에 물건을 말리는 것으로 추정되며, 彗는 뜻 없이 성부로 쓰인 것 같다.

習에는 받침이 있고 彗에는 받침이 없긴 한데, 형성자 중에서는 立(설 립)이 位(자리 위)의 성부로 쓰인 것처럼 없던 받침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 정장상팡과 벡스터·사가르의 상고음 추정에서는 彗에 원래 받침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갑골문에서 習은 '반복하다', '중복하다', '인습' 등의 뜻으로 쓰였는데, 이는 襲(엄습할 습)과 비슷하다. 襲에는 '중복하다', '인습' 등의 뜻이 있는데, 習이 이 뜻을 가차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중복하다, 반복하다는 뜻에서 반복해서 익힌다는 뜻이 나온 것 같다. 굳이 논어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전국시대 출토문헌인 곽점초간에서 이미 학습하다는 뜻의 용례가 나타난다.


習(익힐 습, 습관(習慣), 학습(學習) 등, 어문회 6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習+手(손 수)=摺(접을 접/섭): 접선(摺扇), 접지(摺紙) 등. 어문회 준특급  

習+火(불 화)=熠(빛날 습): 습욱(熠煜), 번성습습(繁星熠熠) 등. 어문회 특급  

習+衣(옷 의)=褶(사마치/주름 습|겹옷 접): 습곡산맥(褶曲山脈), 균습(菌褶) 등. 어문회 준특급  

習에서 파생된 한자들.

習 자체는 중학교 교육용 한자이고 자격증에서도 상당히 낮은 수준에서 다루지만, 習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한자들뿐이다.


習이 들어가는 한자들 중에서는 摺과 褶이 모두 옷이나 종이를 접는다는 뜻이 있는데, 아마 옷감이나 종이가 겹치도록 접는다는 점에서 유래한 것 같다. 이 글자들이 접는 행위와 관련 있는 折(꺾을 절)과 소리가 비슷한 것도 어떤 관련성을 암시한다.

한편 習이 유래한 彗에서 파생된 한자들에 '작다'라는 뜻이 들어가는 한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習 역시 熠·謵(속닥거릴 습)·㿇(약간아플 습)처럼 '작다'라는 뜻을 공유하는 한자들을 파생시켰다. 熠에는 '빛나다' 외에도 '도깨비불'이란 뜻이 있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習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한편 習에서 파생된 한자 중에서는 창 과(戈)를 더한 㦻이라는 한자가 있는데, 이 글자는 襲(엄습할 습)의 동자이지만 현대에 쓰이는 건 襲이지 㦻이 아니다. 어째서 공격을 의미하는 한자에 무기가 아닌 옷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



習은 羽(깃 우)와 白(흰 백)이 합한 글자 같지만, 갑골문으로는 彗(살별 혜)에서 소리를, 日(날 일)에서 뜻을 가져온 글자로 햇볕에 물건을 말리다가 원 뜻이며, 겹치다, 반복하다의 뜻으로 가차하다 반복해서 익히다로 파생되었다.  

習에서 摺(접을 접/섭)·熠(빛날 습)·褶(사마치/주름 습|겹옷 접)이 파생되었다.  

習은 파생된 한자들에 '겹치다'의 뜻을 부여하며, 또 파생된 한자들 중에는 '작다'의 뜻을 공유하는 한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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