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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Aug 20. 2024

젖을 습(溼)에서 파생된 한자들

젖다, 진펄, 말리다 등

지난 번에 다룬 엄습할 습(襲)은 나는용 답(龖)에서 파생된 글자이지만, '습격하다'라는 뜻은 다른 한자를 가차한 것이라고 했다. 그 한자는 다음과 같이 생겼다.

이 한자는 젖을 습(濕)과 관련이 되는 글자다. 그래서 오늘은 濕의 원형, 溼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루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濕을 쓰지만, 대만에서는 溼을 쓴다. 《설문해자》를 따르면 원래는 이 글자가 '젖을 습'을 뜻하는 글자였다. 濕과 溼 중에서 먼저 나타나는 한자도 溼이다.

溼의 변천. 김준수, 〈'습'자상고성모고〉(2014) 중에서.

먼저는 갑골문에 물 수(水), 실 사(絲), 그리고 絲 중간을 잇는 두세 개의 가로줄로 구성된 한자가 나타난다. 위 그림의 01, 02번 한자다. 여기에 나타나는 작을 요(幺) 두 개는 絲의 생략형이다. 01, 02, 03번 한자는 모두 지명으로 쓰이는데, 溼의 첫 형태로 추정하고 있다.

이 한자는 물(水)에 젖은 실(絲)을 선반(一, 二 三 등)에 걸쳐 놓아 말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에서 젖다라는 뜻이 나온 것으로 본다.

금문에서는 絲 아래에 흙 토(土)가 추가되어 지금 쓰이는 溼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는 땅이 젖었다는 뜻으로, 진펄 습(隰)의 원 글자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면 濕은 무엇인가? 이 글자는 금문이나 전국시대 출토 문자에서는 보이지 않고 《설문해자》에서는 본래는 현 중국의 산둥 성을 흐르는 강의 이름으로, '물이름 탑'이라는 한자로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溼이 물에 젖은 실을 말린다는 의미라는 것을 감안하면, 말린다는 뜻을 강화하기 위해 날 일(日)을 추가한 한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물이름 탑'이던 濕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溼을 대신해서 '젖을 습'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濕을 간략화해서 湿의 형태를 쓰고 있으나, 대만에서만은 원래의 한자 형태를 찾아내 溼을 쓰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나타날 현(顯)의 일부분인 㬎이 濕의 소리를 나타낸다고 하지만, 顯과 濕의 음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顯과 溼(濕)의 글자를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나타날 현(顯)의 변천. 김준수, 〈'습'자상고성모고〉(2014) 중에서.

지금은 溼(濕)이든 顯이든 絲를 그냥 그대로 쓰지만, 원래는 絲를 어떤 식으로든 잇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溼에서는 두세 줄로 絲를 받치고 있지만 顯에서는 絲를 단 하나의 줄로 잇고 있다. 나중에 絲를 잇고 있는 줄들이 하나로 간략해지고, 더 나아가 완전히 생략되면서 우연히 같은 모양이 되었을 뿐이지 원래는 다른 글자인 것이다. 그래서 위 두 그림이 있는 논문의 글쓴이 김준수는 濕은 溼의 원형에 日이 추가된 것이지 顯과는 다른 글자로 보고 있다. 둘은 출발한 글자가 비슷하게 생겼고, 우연히 같은 형태가 되었을 뿐이다.


溼(濕)의 원형은 水+絲+一(또는 二, 三)로 나타낼 수 있지만, 이런 글자는 컴퓨터에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나마 가장 가까운 溼으로 대신하겠다. 溼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溼+日(날 일)=濕(젖을 습): 습기(濕氣), 흡습(吸濕) 등. 어문회 준3급  

溼+日(날 일)=濕→漯(물이모이는모양 탑|강이름 루): 탑하(漯河) 등. 어문회 특급  

溼+阜(언덕 부)=隰(진펄 습): 원습(原隰) 등. 어문회 특급  

溼에서 파생된 한자들.

중간에 있는 漯이 생소할 텐데, 원래는 濕으로 써야 하는 글자가 日이 밭 전(田), 絲가 가는실 멱(糸)으로 와전되어 생겨난 한자다. 이 한자에는 '강이름 루'라는 다른 훈과 음도 있는데, 이 역시 우연의 일치로 같은 모양이 되었을 뿐 원래는 뜻을 나타내는 물 수(水)와 음을 나타내는 여러 루(累)가 결합해 만들어진 별개의 한자다.

그래서 漯河는 서로 다른 세 강을 나타내는데, '탑하'라고 읽으면 산둥성에서 발원하는 강, '누하'라고 읽으면 허난성에서 발원하는 강 또는 허베이성에서 발원하는 또 다른 강을 가리킨다. 탑하는 지금은 사라졌으나, 누하는 지금의 뤄허시라는 지명에 남아 있다. 뤄허시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누하시다. 탑하는 濕河로도 쓸 수 있는데, 이때는 '습하'가 아니라 '답하' 또는 '탑하'로 읽는다.


溼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적으나, 소리뿐만 아니라 뜻도 '젖다'에서 인신되어 비슷한 한자들이 모여 있다. 옛 글꼴에서는 溼의 일부분을 포함했으나 지금은 濕의 일부분을 포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급수 시험에 나오지 않는 한자들 몇을 더 예로 들겠다.

隰은 阜(언덕 부)가 뜻을 나타내고 溼이 소리를 나타내며, 언덕이 젖어 진펄이 되었다는 뜻이다.

㙷(더할 칩)은 土(흙 토)가 뜻을 나타내고 溼이 소리를 나타내며, 축축해지기 쉬운 낮은 땅, 또는 이런 땅을 쓰기 위해 흙을 채워 더한다는 뜻이 되었다.

㬤(햇빛쬘 급)은 日(날 일)이 뜻을 나타내고 溼이 소리를 나타내며, 젖은 물건을 말리기 위해 햇빛을 쬐인다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溼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溼(젖을 습)은 물에 젖은 실을 걸어서 말리는 모습을 본뜬 것으로, 이에서 '젖다'라는 뜻이 나왔으며, 濕(젖을 습)의 원 글자이다.

溼에서 濕(젖을 습)·漯(물이모이는모양 탑)·隰(진펄 습)이 파생되었다. 

溼은 파생된 한자들에 '젖다'와 관련된 뜻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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