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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Aug 23. 2024

연이을 련(聯)에서 파생된 한자들

잇다, 관계하다, 나타나다 등

지난 글에서 다룬 젖을 습(濕)과 나타날 현(顯)은 각각 물 수(水)와 머리 혈(頁)에 같은 모양의 한자가 결합한 모양이지만, 우연의 일치로 같은 형태가 되었을 뿐 실제로는 다른 한자였다고 했다. 이 글에서 다룰 한자들은 바로 나타날 현(顯)에서부터 시작한다.

顯은 지금은 날 일(日), 실 사(絲), 머리 혈(頁)이 결합한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옛 형태에서는 絲의 두 실뭉치를 잇는 끈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顯의 변천.

이 絲를 실뭉치로 이어 놓은 한자는 연이을 련(聯)의 초기 형태이다. 지금의 聯은 이 초기 형태에 귀 이(耳)를 더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絲를 실뭉치로 이은 한자와 귀에 실이 이어진 한자가 가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했다.

지난 글에서도 가로 줄로 絲를 이어 놓은 한자들을 분석해 가로 줄이 두세 개 있는 한자는 濕과 관련되고, 가로 줄이 한 개만 있는 한자는 顯이나 聯과 관련된다고 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이미 다른 논문에서도 나왔다.

絲를 가로줄로 이은 한자의 두 가지 다른 유형.

대만대학의 장우위는 석사논문에서 絲를 가로줄로 이은 한자를 중간을 꿰뚫는 가로선이 있는 A류와 없는 B류로 나누고, A류는 접속·습격·젖다는 뜻을 지니고 B류는 잇다는 뜻을 지닌다고 구분했다. 지난 시간에 다룬 濕이나 襲은 A류고, 이번에 다룰 顯이나 聯은 B류에 속한다.

저렇게 실들을 중간에 꿰뚫는 가로선 없이 이은 한자가 聯의 초기 형태로 보이지만, 이와는 달리 귀 이(耳)에 실이 이어진 형태도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한다.

왼쭉부터 聯의 갑골문, 금문, 전국시대 문자,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이 글자는 귀에 실이 이어진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귀를 진짜 사람의 귀에 실로 장식을 이은 것으로 보기도 하고, 솥이나 술잔, 소반 등의 기물의 귀에 줄을 이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실뭉치를 줄로 이은 형태나 귀에 실을 이은 형태가 따로 존재하지만, 그 뜻은 둘 다 무엇을 잇는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전국시대 문자는 줄로 이은 실뭉치와 귀가 같이 있어서, 두 가지 다른 聯의 기원을 하나로 합쳐 놓은 것 같다. 여기에서 실뭉치를 이은 줄이 생략된 것이 《설문해자》에 수록되었다. 그래서 이 글자를 귀 이(耳)와 실 사(絲)가 합쳐진 회의자로 보았지만, 絲를 가로선으로 이은 옛 형태를 보지 못했기에 잘못 해석한 것이다.

지금의 聯은 絲가 아닌 뭔가 특이한 한자를 옆에 거느리고 있는데, 《설문해자》에서는 이 한자를 '실꿸 관'으로 풀이하며 絲가 뜻을, 卝(쌍상투 관)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보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원래 聯의 오른쪽 부분이 絲을 줄로 이은 형태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즉, '실꿸 관'이라는 한자는 원래는 연이을 련(聯)의 초기 형태인 一+絲였고, 나중에 다른 모양으로 전승된 것이다. 실꿸 관이 웹 환경에서 쉽게 깨지는 글자이기도 해서, 이번 편의 파생의 핵은 '실꿸 관'이 아닌 '연이을 련'으로 보겠다.

이 연이을 련의 초기 형태는 잇다는 뜻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제사 기물인 호련(瑚璉)을 뜻하는 호련 련(璉)을 가차하기도 한다. 璉의 소리 부분이 이을 련(連)이니, 지금도 聯과 連은 구분해서 쓰긴 해도 거의 같은 글자로 보는데, 옛날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참 전에 어지러울 련(䜌)과 이에서 파생된 변할 변(變) 등의 한자를 소개했는데, 그때에는 䜌을 말씀 언(言)과 실 사(絲)가 합한 회의자로 설명했지만 言에 이 연이을 련의 초기 형태가 붙은 형성자로 설명하기도 한다. 絲를 잇는 가로줄이 言의 가로줄과 합한 형태로 보는 것이다. 


연이을 련(聯-耳)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聯-耳)+耳(귀 이)=聯(연이을 련): 연합(聯合), 관련(關聯) 등. 어문회 준3급   

(聯-耳)+門(문 문)=關(관계할 관): 관계(關係), 기관(機關) 등. 어문회 준5급  

(聯-耳)+日(날 일)+頁(머리 혈)=顯(나타날 현): 현미경(顯微鏡), 영현(英顯) 등. 어문회 4급  

聯-耳에서 파생된 한자들.

연이을 련(聯-耳)은 이 한자들에서 소리뿐만 아니라 뜻도 나타내고 있다. 김준수는 聯과 顯의 초성 자음이 달라서 顯의 성부가 聯이라는 학설에 신중론을 펼치기는 한다.

聯(연이을 련)은 耳(귀 이)가 뜻을, 聯-耳(연이을 련)이 소리를 나타내며, 귀에 실뭉치를 이어 놓은 데에서 '잇다'는 뜻이 나왔다.

關(관계할 관)은 門(문 문)이 뜻을, 聯-耳(연이을 련)이 소리를 나타내며, 문을 이어서 걸어 잠그는 도구에서 '빗장'이라는 뜻이 나왔다. 그래서 '빗장 관'이라고도 한다.


한편 顯은 聯-耳에 日과 頁이 한꺼번에 붙어 파생된 한자이기 때문에 그 해석도 어려운 편이다. 먼저 聯-耳에 日이 붙어 㬎이라는 한자를 만들고 이 한자에 頁이 결합해 파생된 한자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顯이 먼저 나타나고 㬎은 나중에 顯의 약자로서 만들어졌다.

임의광은 顯이 日과 絲와 頁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실을 햇빛에 비추어 나타낸다는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絲가 아닌 (聯-耳)이 들어가는 글자라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聯이 귀에 이어 놓은 장식을 본딴 것이니, 햇빛에 귀 장식을 비추어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日을 해가 아니라 옥 기물로 보아, 옥에 실 장식을 달아 놓고 조문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聯과 關에서는 一+絲가 聯-耳로 바뀐 것과는 달리, 顯에서는 그냥 가로줄이 없어지고 絲가 간략해진 형태로 바뀌었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聯-耳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顯(나타날 현)은 濕(젖을 습)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연의 일치이고 실제로는 聯(연이을 련)의 초기 형태인 絲(실 사)를 한 줄로 이은 글자(聯-耳)에 日(날 일)과 頁(머리 혈)이 붙어서 파생됐다.  

聯-耳에서 聯(연이을 련)·關(관계할 관)·顯(나타날 현)이 파생되었다.  

聯-耳는 파생된 글자에 실 장식이나 잇다는 뜻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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