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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이 Jul 09. 2024

이제는 기꺼이 이 우물을 벗어나 도전하고 싶다.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5



사실 태국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국 인턴십을 지원할 기회가 있어서 정말 우연히 지원하게 되었다.

나의 스펙이나 영어 실력을 비추어 봤을 때 나는 당연히 서류 탈락이었는데 그래도 대표님이 나를 한 번 만나주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한 달 뒤에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데 그때 합격 여부에 대해서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태국 여행을 갔을 때도 혹시나 인턴십 합격 연락이 오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로밍까지 해서 갔었다. 하지만 한 달 뒤에 연락은 없었다.

아쉬운 것도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뉴욕에 가게 된다면 매일 브로드웨이에 가서 연극을 보고, 연기 아카데미도 다니고, 쉬는 날에는 보깅도 배우러 갈 생각에 한편으로 꽤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김칫국을 거의 뭐 대야로 드링킹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 주제를 알았기에 대표님에게 한 번 더 어필해 보지 않고 포기했다.


그리고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면 대만으로 가려고 했다.

3박 4일 짧은 여행이었지만 날씨, 음식,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정말 좋았고 중국어를 할 줄 알았기에 언어 실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뉴질랜드로 왔을까?


일단 대만에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외국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적응하는 스트레스가 좀 적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19살 때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중국어를 배웠는데 그때 정말 날마다 울면서 잤었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을 적응하는 힘듦을 또 겪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한국어 다음으로 내가 잘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생에 딱 한 번 받을 수 있는 비자로 외국에서 1년간 생활할 수 있다면 그곳이 대만이기를 희망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워킹홀리데이 협약이 맺어있는 나라마다 딱 한 번 갈 수 있는 거였다.

(요즘은 두 번씩 비자를 내주는 곳도 생겼고, 나이 제한도 올라가는 추세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지금 당장 꼭 대만으로 가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그러던 중 내가 태국 여행을 하면서 들어온 물음표도 컸다.


"영어까지 할 줄 알면 이 지구는 내 놀이터가 되겠지?"


나는 지금까지 영어 트라우마가 깊어서(이것도 사연이 길다…. 언젠가 꼭 이 이야기를 풀 수 있기를…. 하하) 영어 공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만약에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미국 인턴십을 더 어필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나가서 먹고 싶은 음식 주문하는 것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 대표님에게 나를 인턴으로 뽑아달라는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대만으로 워홀을 가려고 한 이유도 영어를 할 자신은 없고 외국은 나가고 싶었을 때 나의 안전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분명 대만으로 워홀을 갔어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맨땅의 헤딩 같은 뉴질랜드보다 조금은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어? 나 왜 도전하기를 두려워하고 있지?"


나는! 벌써 쉽고, 안전하고, 편한 것만 쫓아가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더 어렵고, 위험하고, 불편한 것들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쉬운 선택을 하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나쁜 삶의 방식은 아닌 건 분명하다. 

굳이 사람이 모든 고생을 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 무모하기만 해도 머리 아프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내 모습에 크게 실망했던 이유는 태국 여행이 컸다.

태국 여행을 하면서 만난 나의 모습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충분히 휴식하고, 나를 위해 맛있는 밥을 먹고, 복잡한 머릿속에 떠다니는 말들을 일기로 쓰고, 예쁜 노을을 보며 멍 때리다 보니 내 눈빛이 다시 반짝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까먹고 있던 내 눈빛이었다.


반짝 거리는 내 눈을 보며 말해주었다.


"겁이 나고, 망설여지고, 굳이 뻔이 보이는 가시밭 길을 왜 걸어가야 하나 싶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너는 이 지구 어디에서든 즐거움을 찾을 거야 그러니 기꺼이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마"


미국 인턴십에 떨어져서 아쉬우면 영어 공부해서 다시 지원하면 되고, 대만 워홀은 뉴질랜드 갔다가 가면 되고, 그렇게 이 지구를 여행하며 모은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연극하면 되는 거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우물 안에 갇힐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스스로 우물 안에 갇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스스로 우물 안에서 보이는 하늘만 보고 내 세상의 전부인 양 여기고 있었다.


이제는 기꺼이 이 우물을 벗어나 도전하고 싶다.

고작 영어 따위로 내 세계가 작아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뉴질랜드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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