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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이 Jul 12. 2024

내가 두고 가야 할 것들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6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연재 요일을 바꾸고 싶었는데 30일 이후로 변경이 가능하데요…. 그래서 대놓고 예고합니다!

다음 주 화, 목 둘 다 늦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고 어쩌다가 투잡 하게 되었는데 스케줄이 약간 꼬여서 주 6일을 일하게 생겼거든요…. 사장님이 사람 구할 때까지만 부탁한다고 오케이 했는데 사장님이 사람 구하는 게 더 빠를지, 아니면 제가 그만두는 게 더 빠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연재는 최대한 늦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웠던 한 달간의 태국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꿈틀거리는 역마 기운 때문에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매일 비행기티켓을 확인했던 거 같다.

하지만 기꺼이 우물 밖으로 벗어나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막상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내가 두고 가야 할 것들이 어찌나 눈에 밟히던지.


그중에서도 연극을 두고 가는 게 가장 겁이 났다.


근 몇 년간 나의 온 우주는 연극에 맞춰져 있었다.

정말 너무 사랑해서 너무 잘하고 싶었지만 나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억울해 씩씩거리기를 무한히 반복하는


내 삶의 전부였다. (여전히 전부다)


아주 보잘것 있는 것은 아니어도 내가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연극 경력, 함께 해준 동료들 그리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좋은 기회들을 두고 워홀을 가는 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연극을 한 5년이라는 시간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일 수 있지만 내가 5년 차를 넘어 10년, 20년 차가 되려면 지금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을 가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연극을 시작했다.

운이 좋아 많은 작업에 참여했고, 좋은 동료들과 공연도 만들어 보며 정말 많이 배웠다.

연극의 'ㅇ' 자도 모르던 때를 생각하면 이제는 적어도 'ㅇ' 정도는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0.5분의 역할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1인분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싶은 욕심이 시작한 시기가 5년 차 때부터였다.


나는 안다.

어떤 연극 작업에서도 내가 1순위가 아니라 저 순위권 바깥에 있는 어떤 연극인 중 한 명이라는 걸

너무 자학적인 생각이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이게 현실이다.

재능충이 넘쳐나는 한국에는 엄청난 연극인들이, 연기자들이 있다.

그들도 빛을 못 보는 와중에 내가 뭐가 특출 난 게 있어서 섭외 1순위에 있겠는가.

그래서 연극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었을 때 내 순위도 올리고 싶고, 실력도 한층 더 성장시키고 싶었던 거다.

사실 그래야지만 앞으로 나에게 작업이 계속해서 허락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조금 속상했다.

그 정성을 들여 사랑해 온 것들이 밀려오는 파도 한 번에 힘없이 무너질 모래성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벽돌로 쌓아 올린 집은 아니어도 바람 한 번에 나부끼는 지푸라기 집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이렇게 연약할 줄 몰랐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아직 이건 현재진행형이라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후기 남겨볼게요)


그런데!


모래성 같고, 지푸라기 집 같고, 다시 흔적이나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를 그런 나의 연극 경력이라도

두고 떠나가기가 너어어어엉어무 아까웠다.


그런데! 222


나는 이미 이런 생각들로 약 3년간 워킹 홀리데이를 가네 마네를 엄청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이미 망설이다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버렸다.

(아마 내가 뉴질랜드를 가는 현실이나 그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현실이나 어디 한 곳이라도 핑크빛이었으면 이렇게 망설여지지 않았을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어디를 가든 가시밭길임이 분명했기에 더 망설여졌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모은 것이라곤 '겁'뿐인가…?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가?


그래서 태국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충전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또 갈팡질팡하는 상황 속에서 다시 무기력했다.


그런 시간 속 어느 날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자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이렇게 계속해서 망설이다가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노화와 후회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뉴질랜드 이민성에 들어가서 바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새벽 감성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원래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3천 명 선착순 신청인데 코로나19 이후 정원을 7천 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코로나 영향으로 22년 정원이 다 차지 않아서 나는 남은 자리에 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카드 결제 명세서를 보니 38만 원이 결제되어있었다.

이건 취소도 환불도 안 되는 일방적인 결제이니 '나는 못 먹어도 고'다


만약에 내가 새벽 감성에 이끌려 급발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바로 신청할 수 있는 정원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나는 또다시 망설였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모래성같이 연약한 내 연극 경력이 알고 보니 단단한 벽돌이 될지, 또는 새로운 길을 찾아 재미있게 개척해 나갈지, 아니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지 사람 일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다만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더 이상 '망설임' 속에서 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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