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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이 Jul 16. 2024

급발진 그 후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7


뭐가 있겠는가? 바로 부스터 달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는 데 망설여서 문제지 시작만 하면 노빠구다 브레이크도 없고, 풀액셀만 존재한다.

그래서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막막함에 잠에 못 들던 여러 밤들 속에서 나의 '막막함'을 하나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했다.


1. 나는 진짜로 왜 뉴질랜드였을까?


22살? 23살? 에 정말 흘러가듯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 뉴질랜드에 가서 양들이랑 뛰어놀며 살고 싶어."

나는 저 때 뉴질랜드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뉴질랜드' 이름이 뭔가 이쁘잖아:>

(예…. 제가 폼생폼사라서 곧 죽어도 낭만이 먼저인 사람이거든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워홀 국가 양대 산맥으로 호주와 캐나다가 있는데 굳이 굳이 뉴질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사실 진짜 별거 없다.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저 한마디가 어딘가 깊숙이 잘 자리 잡고 있다가 기회가 되니까 불쑥하고 튀어나온 거다.

그래 좋아. 이름 이쁜 나라 커몬 가보자고. 이제 진짜 낙장불입이다.


2. 나는 뉴질랜드를 전혀 모른다.


그럼, 뉴질랜드를 공부해야지. 다음날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수많은 워홀 유튜버를 찾아봤고, 블로그들을 읽어봤다.

해야 할 일이 오조 오억 개라 더더욱 막막해졌지만, 더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연이 그렇게 예쁘다고?


3. 나는 영어를 못한다.


그럼, 영어 공부를 해야지. 바로 네이버에 화상 영어를 검색해서 서너 군데 정도 무료 테스트를 해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화상 영어 업체를 골라 주 5회 30분씩 영어 공부를 했다.

사실 공부라고 할 것도 없이 새벽에 반수면 상태로 선생님과 수다 떠는 건대 처음 1~2달은 정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현타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3개월쯤 지났을 때는 선생님이 몇 페이지 책을 펴라는 말 정도는 알아 들 수 있게 되었다.


3-1. 어학연수를 가자.


나는 맨땅의 헤딩으로 언어를 배우는 경험을 제법 해본 편이다.

냅다 그 나라에 가서, 냅다 살면서, 냅다 현지 친구들과 먹고 자고 하면서 언어를 배운 케이스다.

그래서 이번에 뉴질랜드에 갔을 때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에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일본이나 중국에 갔을 때처럼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놀기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돈도 벌어야 하고, 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걸 혼자 해야 한다.

근데 언어가 안 된다? 이건 안 봐도 대환장 파티가 눈에 훤하게 보였다.

그래서 또 바로 네이버에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검색해서 유학 에이전시 상담을 열 군데 정도 예약하고 가장 빠르게 연락이 오고 견적서를 보내준 업체에 예약금을 걸었다.


4. 나는 시티에 살고 싶다.


자연이 유명한 뉴질랜드에 가면서도 굳이 굳이 시티에 살고 싶었던 이유는 자연은 여행했을 때 좋은 거지 살기에는 퍽 불편한 곳이다.

근데 시티에는 그만큼 많은 워홀러들이 있어서 경쟁도 치열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를 고용주가 뽑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어 보였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4-1. 이력을 준비하자.


워홀러들의 로망이 '카페잡'인데 나한테는 시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잡이 '카페잡'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뉴질랜드의 카페 문화는 한국하고 180도 다르기 때문에 한국 카페 경력을 들이밀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한국 카페 이름을 써놔 봤다.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들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인 별다방에 입사했다.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봤을 때 뉴질랜드 손님들의 극악무도한 커스터마이징 주문받는 연습도 미리 할 수 있고 이력을 만들기에도 딱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한국 별다방이 인력난을 겪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로 사람을 부려 먹는 법을 잘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나는 적성에 잘 맞았다. 잘 못해 그곳에 뼈를 뭍을 뻔했다.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이 계속 요구되었던 연극과는 다르게 자아 빼고 매뉴얼만 탑재한 채로 가식적인 친절을 베푸는 건 정말이지 너무 편했다.

방대한 매뉴얼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방대한 매뉴얼은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준다.

매뉴얼은 어느 순간 익숙해지기 마련이라 그냥 적당히 뇌 빼고 일하면 됐다.


4-2. 자격증을 준비하자.


별다방에 일하는 것도 모자라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너무 없었기에 CV에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싶어서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러 갔다. 한국은 '아아'의 민족이라 바리스타에게 요구되는 것은 얼음컵 빨리 푸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플랫 화이트'의 민족이 키위들은 뜨거운 커피만 마신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는 누가 누가 스팀 빨리 치고 하트 잘 그리나 싸움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 2회 3시간씩 두 달을 커피학원에 다녔다.


5. 플랜 B를 세운다.


나는 돈이 없다. 그래서 마냥 시티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시간을 계속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달이라는 기한을 잡고 그 안에, 시티에서 일을 못 구하면 워홀들의 성지 농, 공장으로 가야 했는데 깡시골 출신으로써 농장 일은 몸이 보통 고단한 게 아닌 걸 너무 잘 알기에 나는 가능하면 농장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농장 일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서 뉴질랜드에 가서 농장잡을 구한다면 특별히 튀지 않게 수많은 노동자 사이에 묻혀서 일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공장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일하는 과정을 영어로 설명해 주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했을 때 '놉'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빅데이터가 바로 읽고 다음 날 핸드폰 광고로 '롯데제과' 공장 구인 공고를 보여줬다.

그래서 바로 지원했고, 면접을 봤고, 붙었고,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타임라인이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내가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 위해 준비한 1년의 시간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곧 내가 풀어야 하는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있다는 소리다.

언제쯤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를 끝내고 뉴질랜드 땅에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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