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8
지각도 아닌 결석을 2주나 하고 뻔뻔하게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생계와 창작활동이 동시에 주어지면 저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창작 활동을 애써 모른 척합니다.
아직도 뉴질랜드 프롤로그에 있지만 저는 지금 뉴질랜드에 온 지 언 4개월을 넘어 5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7월은 제 뉴질랜드 워홀 기간에서 삭제하고 싶을 정도로 일에 치여서 산 한 달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정말 없었거든요….글을 계속 올리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마음 한쪽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뭐 이 글을 쓰는 게 당장 다음 주 내 플랫비를 내주는 것도 아닌데 누워서 릴스를 보며 전두엽을 녹이는 게 오히려 내일 출근을 하기 위한 체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주를 보내고 오늘 글을 올려야 하는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숙제 같은 글쓰기 행위만이 타지 생활에서 스스로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이왕 뻔뻔하게 돌아온 거 부탁드려요.
늦고, 결석하고 그래도 저 브런치 글 쓰는 거 포기하지는 않았으니까 많관부ㅎㅎㅎ
빙빙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로 열을 맞춰 생산되는 초콜릿을 보고 있으면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가 된 것 같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공장 안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사람인지 기계의 한 부품인지 헷갈리게 된다.
처음에는 하루에 12시간 주 5일 근무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의 신체는 생각보다 강인했다.
다만 눈에 생기를 잃어갈 뿐이었다.
공장 노동자의 삶은 퍽이나 단순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 반에 공장에 도착하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고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7시 정시에 지문인식을 하고 공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공장 안에서 점심 저녁을 다 먹고 오후 7시가 되어서 공장 밖으로 나와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오면 오후 9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에는 다음날 다시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해서 서둘러 하루를 마무리해야 했다.
나는 한낱 아르바이트생이었기에 기계를 만지는 일이나 배합을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제품의 불량을 검수하거나 제품을 박스에 포장하는 역할을 했는데 공장의 기계는 사람의 편의성을 위한 게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존재했다.
그래서 기계가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야 했다.
그 때문에 잠시 딴생각에 빠져서 손이 느려지면 내가 미처 포장하지 못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들이 순식간에 쌓이기 시작한다.
공장으로 아르바이트하러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단순노동의 지루함이 굉장히 힘들 거라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편안했다.
생각하는 것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뇌 빼고, 눈동자에 힘 풀고 그저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초콜릿 과자 중에 불량을 쏙쏙 골라서 내 입에 넣으면 되는게 좋았다.
그리고 내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한창 주60 시간 근무 추진하려고 하는 내용이 뉴스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시기다.
나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딱히 주에 몇십 시간 이렇게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 60시간 근무로 매일 뉴스가 시끄러운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하루 12시간 주 5일.
총 주 60시간 근무를 해보고 나서야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60 시간 노동시간에 대해서 분노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휴게 시간 2시간을 빼면 주 50시간이었다)
나는 한 달 일하고 나왔지만, 휴게실에서 여사님들과 오가며 짧게 이야기를 나눴을 때 평균 근속연수가 20년이었다.
무언가 꾸준히 하는 힘이 약한 나에게는 몇십 년을 장시간 노동을 하며 살아온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내 삶의 속도가 아닌 기계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이 안녕한지 궁금했다.
공장에서는 나 '김본이'라는 삶은 없었고 그저 제품의 불량 검수를 하는 사원 번호 000000 만 있었을 뿐이다. 퇴근 후에는 파김치가 되어서 나를 아껴주고 돌봐줄 시간도 없었다.
사실 일이 끝난 이후의 삶을 꿈 꿀 수 없는 노동시간이었다.
내가 함부로 그분들의 삶을 판단할 수 없지만 직업의 귀천이 너무나 있는 한국에서 공장 노동자의 삶은 참 고단했다.
아침 점호를 하면서 오늘 하루도 산재 없는 안전한 하루를 보내자며 구호를 외치고 체조를 같이한다.
그러고는 반장님으로 불리는 분이 몇 번을 강조해서 말한다.
내일 당장 그만둬도 되니까 제발 잠수만 타지 말라고.
사직서 쓰러 무조건 회사 다시 와야 하니까 제발 이야기하고 그만둬 달라고.
내일은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그래도 내가 공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 반장님께서 나를 불러서
"너 여사님들이 일 정말 잘한다고 하더라. 이거 내 번호니까 나중에 다시 일하고 싶으면 바로 라인이 넣어줄 게 연락해."
라고 이야기 해줬다.
인정욕구가 강한 나에게는 이게 뭐라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내가 워홀을 갔을 때 공장으로 일하러 가게 된다면 적어도 혼자 튀지는 않게 일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