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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이 Jul 04. 2024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서 만나는 나의 낯선 모습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4


브런치 북 연재를 시작한 지 단 2회 만에 지각의 위기에 놓였다.

과연 16분이 남은, 이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어쩌면 몇 번을 다시 읽고 수정한 글 보다 더 솔직하고 재미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없으니 각설하고 지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비행기 티켓은 생겼지만, 여행할 돈이 없어 다시 알바몬으로 변신하여 외제 차 리콜 전담 콜센터에서 한 달간 일을 하면서 아침 출근길 지옥철에서 압사당하지 않고 무사히 출근하는 법, 점심을 먹고 밀려오는 식곤증을 이겨내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법, 21층 건물에서 퇴근 시간에 엘리베이터 잡는 법 등등 새로운 경험치들을 쌓았다.


사실 지금에서야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애가 하루하루 말라가서 반건조 오징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따뜻한 치앙마이가 있었기 때문에 한 달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치앙마이는 단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단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는 그런 N 회차 여행자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가이드북을 열심히 읽어보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가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륙 지방이라서 태국의 바다가 있지도 않고, 7대 불가사의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사람들이 아침에 요가하고, 점심에 카페 가고, 저녁에 재즈바 가는 루틴으로 사는 내용들만 가득했다.

요가, 카페, 재즈바는 굳이 치앙마이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길래 사람들이 치앙마이를 얘기할 때면 다들 두 눈이 말똥말똥 해지는지 더 궁금해졌다.


그렇게 재활 선생님에게


"저 6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앉아 있어야 해요. 그러니 한 달 안에 제 추간판 좀 집어넣어 주세요"


라는 미션을 가지고 선생님과 정말 열심히 재활했다.

다행히 나는 복대를 차고 2023년 2월 28일에 혼자 태국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내가 몰라던 사실 하나는 3~4월 기간에 태국 북부는 농사를 위해 밭을 태우는 화전 기간이라 공기가 말도 안 되게 안 좋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세먼지를 피해서 더 미세먼지가 안 좋은 곳으로 날아간 셈이다.

그런데 그런 안 좋은 공기도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해주는 곳이 치앙마이였다.


한 번 여행 가본 치앙마이를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게 약간 부끄럽지만

내가 즐긴 치앙마이는 낮에는 느긋하고 차분한데 밤이 되면 정말 뜨거워지는 곳이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쓰고

저녁에는 재즈바에 가거나 드랙쇼를 보러 가서 뒤집어지게 호응하고 박수를 치다가

새벽 늦게 집에 돌아와 기절하듯이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지루할 틈이 없었고 하루하루가 짧았다.


재즈바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다 보면 옆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그러다 보면 같이 술도 한 잔 하고 또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하도 인사를 많이 하고 다녀서 공짜 맥주 많이 얻어먹었었다.ㅋㅋㅋㅋ)

겉으로 봤을 때 활달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정말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지만 나는 그냥 사람 좋아하는 극 내향인이다.

(내향인이어도 사람 좋아할 수 있어요…. 피로도가 높을 뿐)


그런 내가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헬로! 웨얼알유프롬? 암보니킴! 나이스투미츄!”


를 외치고 다니는 모습이 퍽 신기했다.

특히 대만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는 표준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 편안했다.

이때 언어의 자유가 여행의 만족도를 엄청나게 상승시킨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이때 이런 물음표가 뿅 하고 튀어난 것 같다.


"중국어만으로도 내 세상이 이렇게 넓어지는데, 영어까지 할 줄 알면 이 지구는 내 놀이터가 되겠지?"


지금까지 꾹꾹 잘 눌러놓았던 나의 역마살이 미친 듯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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