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3
열심히 포장해서 번아웃을 즐기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현실은 집에서 허리 아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서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있는 쉰내 나는 백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나는 이불과 한 몸이 되어서 릴스를 보며 전두엽을 녹이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 언니가 뜬금없이 나한테
"너 여행 좀 다녀와라"
라고 했다.
코로나19 기간에 취소된 비행기 티켓을 포인트로 환불받았는 데 사용기간을 더 이상 연장 할 수 없고,
자신은 도저히 여행을 갈 시간이 없으니 생일 선물로 비행기 티켓을 사 줄 테니 여행을 다녀오라고 한 것이다.
근데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혼자서 해외여행을 다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렸을 때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일이 항상 우선순위였기에 여행은 뒷전이었다.
약간의 짬이 생겨서 4년 전에 3박 4일 짧게 친구들과 다녀온 대만 여행이 내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근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국내를 비롯해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언니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태국 치앙마이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얻었고 이 치앙마이 여행이 나를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까지 이끌어 주었다.
당장 비행기 티켓은 생겼지만 공연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고 허리 재활하는데 돈이 줄줄 세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알바몬을 미친 듯이 뒤져 딱 한 달만 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외제차 리콜전담 고객센터'로 출근하게 되었다. (브랜드를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별의별 알바를 다 해봤지만 알바계에서 추노가 많다는 콜센터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첫 출근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강성 고객은 없었고 적당히 삭막한 사무실에서 가식적인 친절함을 베풀면 되는 게 나에게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9to6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해본 게 처음이라,
처음 경험해 보는 피곤함이었다.
눈을 깜빡일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한 사무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있어서 더부룩한 속 그리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퇴근할 때가 되면 목이 쉬었다.
한 달이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근무할 수 있었지 혹시나 내가 이걸 평생 일해야 한다고 상상하면 나는 첫 출근날 추노를 했을 것이다.
새삼 회사원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밥벌이들 중에 쉬운 건 역시나 단 하나도 없는 거다.
그리고 리콜전담 센터에서 일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외제차는 타지 말아야겠다.'
몇십만대 대상의 리콜을 진행하는데 국내에 손꼽히는 공인센터 개수 때문에 심한 지점은 2023년인데 2025년 예약을 받고 있을 정도라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나도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인컴만 받으면 되는 파트여서 들어오는 전화가 없을 때는 핸드폰을 해도 됐었다.
그래서 틈틈이 치앙마이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19살에 친언니와 함께 동남아를 1달 반정도 여행을 했었다. 그 후로 6년 만에 가는 태국에 오랜만에 설렘과 걱정이 가득했다. 혼자 가는 여행을 처음 준비 해봐서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나는
"아니 이것도 처음이고?"
"저것도 처음이라고?"
"나한테 아직도 처음인 일이 이렇게 많다고?"
하면서 매일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제법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 내가 모르는 세계가 많았다는 걸 오랜만에 체감해 보았다.
6년 동안 연극을 하면서 내 세계가 깊어졌지만 동시에 좁아졌었구나를 깨달았다.
그래서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몇 년 동안 나의 세계가 깊어지기를 원했으니 이제는 넓어질 타이밍인가 보다라고 여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