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2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하면서 살아왔고, 꿈이라서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다 해봤다고 자부한다.
사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뒤돌아보니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다 이루면서 살아왔었다.
어렸을 때 꿈이 서울 가서 사는 거였다.
그런데 20살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
17살에 꿈이 연극하고 배우 하는 거였다.
그런데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제작도 하고 연극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극을 하면서 정말 꼭 하고 싶었던 꿈 같은 공연이 있었다.
정말 우연히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라는 미국의 드랙퀸들의 티비 프로그램을 봤고
정말 우연히 친구가 이태원에 있는 드랙쇼를 하는 클럽에 데려가 주었다.
그때 이태원의 그 작은 클럽에서 사람들 틈에 낑겨서 본 첫 드랙쇼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체였다.
화려한 화장, 의상, 에너지 넘치는 춤과 노래 그리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관객들.
정말 매료될 수밖에 없는 환상적인 쇼였다.
그때부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한 번쯤은 꼭 연극에서 드랙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2022년에 <클럽 GWEN>이라는 공연을 올렸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나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동력을 얻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꿈을 이룬 후에 나는 피로와 공허함 그리고 추간판 탈출증을 얻었다.
원래 공연이 끝나면 따라오는 당연한 후유증이었는데
클럽 GWEN 공연이 끝난 후에는 지금까지 겪어온 공허함과는 결이 달랐다.
꿈을 너무 빨리 이룬 탓일까?
정말 후회 없이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결과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돌아 갈 수도 없는
가운데 껴서 옴짝달싹 못 하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타고 잿더미만 가득 남아있었다.
처음 겪어 보는 번아웃이었다.
다행이라면 공연이 끝나고 당장 출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가 없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되는 백수로운 생활 속에서 나의 번아웃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한 번씩은 다 경험한다는 번아웃을 한 번 즐겨보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