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미 Nov 16. 2024

살고 싶어졌다

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토요일 아침, 침대에 누워 창밖의 가을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어제 불현듯 찾아온 감기가 내 목을 따갑게 하지만 행복하다.

이마에서 뜨끈뜨끈 열이 나고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행복하다.

아파서 행복하다. 내 몸이 아프다는 건 좋은 신호이니까.

불안을 내려놓지 못해 아프지도 못하던 내 마음이 낫고 있다는 모순적인 시그널.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유유히 떠가는 구름, 적당히 차가운 공기.

난 지금 살아있구나.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이 모든 걸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살고 싶어졌다.

어제 저녁, 수 년만에 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보며 결심했다.

죽지 말고 살아서, 포기하지 말고 버텨서 다음에 또 공연을 보러 오자.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게 심장 두근거리고 이렇게 설레는 순간을 찾아다니며 살자.


누구는 사치라고 해도, 남들처럼 집 사게 돈 모아야지 철없게 낭비한다고 혀를 차도

나에게는 이 공연이 명품백 하나 사는 것보다, 통장에 돈을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물론 명품백을 사보지도 엄청난 돈을 저축해본 적도 없어서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 두 시간이 열심히 심리 상담을 받아도 생기지 않던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통장에 쌓여 있는 천 오백 만 원의 돈도 가져다 주지 못한 삶에의 의지를 15만 원으로 되찾았으니

이거야말로 가치 있는 사치, 철들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즐겁게 살자. 그래야 살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행복한 기억을 저축하며 살자.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또 찾아와도 힘을 낼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에 '아, 행복했지'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결국 내가 행복하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