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람의 철없는 생각
토요일 아침, 침대에 누워 창밖의 가을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어제 불현듯 찾아온 감기가 내 목을 따갑게 하지만 행복하다.
이마에서 뜨끈뜨끈 열이 나고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행복하다.
아파서 행복하다. 내 몸이 아프다는 건 좋은 신호이니까.
불안을 내려놓지 못해 아프지도 못하던 내 마음이 낫고 있다는 모순적인 시그널.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유유히 떠가는 구름, 적당히 차가운 공기.
난 지금 살아있구나.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이 모든 걸 그만 두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살고 싶어졌다.
어제 저녁, 수 년만에 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를 보며 결심했다.
죽지 말고 살아서, 포기하지 말고 버텨서 다음에 또 공연을 보러 오자.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게 심장 두근거리고 이렇게 설레는 순간을 찾아다니며 살자.
누구는 사치라고 해도, 남들처럼 집 사게 돈 모아야지 철없게 낭비한다고 혀를 차도
나에게는 이 공연이 명품백 하나 사는 것보다, 통장에 돈을 쌓아두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
물론 명품백을 사보지도 엄청난 돈을 저축해본 적도 없어서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이 두 시간이 열심히 심리 상담을 받아도 생기지 않던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통장에 쌓여 있는 천 오백 만 원의 돈도 가져다 주지 못한 삶에의 의지를 15만 원으로 되찾았으니
이거야말로 가치 있는 사치, 철들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즐겁게 살자. 그래야 살 수 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행복한 기억을 저축하며 살자.
모든 걸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또 찾아와도 힘을 낼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에 '아, 행복했지'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결국 내가 행복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