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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송 Jun 17. 2024

한 베이비 부머의 호찌민 생활

집도마뱀붙이

아내의 태권도 기합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이 나타났다는 증거다. 

그 녀석들은 안방, 건넌방, 거실마다 한 마리씩, 우리의 허락도 없이, 우리와 같이 지낸다. 어떨 때엔 여러 마리일 때도 있다.

그중 한 마리라도 체포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느새 다른 놈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들에 대한 나의 응징기준은 간단하다. 

파리채가 닿을 수 있는 위치 아래로 내려오면 체포한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의 기준은, 출처와 관계없이 보이는 즉시 체포였는데 기준이 많이 완화되었다. 체포하면 다른 놈이 대체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그들과 직접 마주한 시점은 25년 전 일이다. 내가 호찌민으로 발령이 나고, 이후 3개월 정도 지나 가족들이 합류하면서, 사이공 강변의 주택가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 마시려고 거실에 나갔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긴 유리컵 속에 들어가 있는 한 녀석이 컵에서 거꾸로 빠져나오지 못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컵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얼른 주위에 있는 책 한 권을 집어 컵 위를 덮었다. 그리곤 밖으로 나가 컵 속의 도마뱀을 던져 버렸다. 그 녀석들과의 첫 대면이었다. 자연친화적인 그 주택단지에는 물뱀도 가끔 출현하기도 했는데, 도마뱀은 아주 자연스럽게 동네 집들을 드나들었다.


그 당시, 하루는 같은 단지로 이사 온, 신규 부임한 모 회사 직원 한 명이 늦은 밤에 술이 한잔 된 상태에서, 흰 꽃이 달린 나무에서 꽃 한 송이 따려고 하다, 뱀에 물린 사건이 있었다. 베트남에는 킹코브라, 줄무늬우산뱀, 크레이트, 방울뱀아과(Crotalinae)에 딸린 뱀 등과 같은 독사를 비롯해 100여 종이 넘는 많은 종류의 뱀이 있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간 그 직원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사람의 인기척이 있으면 도망가는 뱀의 속성을 생각할 때, 아마도 나무 위에서 지내는 도마뱀에 물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베트남에는 10여 종의 도마뱀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가 베트남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은 사실 “집도마뱀붙이”이다. “게코”라고도 불린다.

영어로는 Common house gecko, Pacific house gecko, Asian house gecko, House lizard, Moon Lizard 등으로 불린다.


대부분의 도마뱀붙이처럼 야행성이며, 낮에는 숨고 밤에 곤충 등의 먹이를 찾는다. 

베트남에서는, 빛에 이끌린 벌레를 찾아 주택 등 건물의 벽을 기어오른다고 해서 “집도마뱀붙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 집도마뱀붙이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작은 집도마뱀붙이는 독이 없으며 사람에게 딱히 해를 끼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 수 있지만 힘이 약해서 피부를 뚫지 못한다. 베트남에서는 집도마뱀붙이를 이로운 파충류로 인식하는데, 모기나 파리, 바퀴벌레 등의 해충들을 주로 잡아먹는 것이 이 도마뱀붙이이기 때문이다. 집도마뱀붙이는 위협을 받으면 자기 꼬리를 스스로 자를 수 있다.


 그 녀석들은, 종이 발바닥에 미세한 섬모 같은 게 달려 있어서 이걸로 벽이나 천장에 붙는 것이 가능하기에 미끄러운 벽이나 천장에서도 잘도 다니고, 거꾸로 매달려서도 재빠르게 잘도 이동한다. 우리 집에 기거하는 녀석들은 배가 불러서인지 가끔씩 집안에 없어야 될 개미나 거미들도 출현하기도 한다. 녀석들의 근무태만이다.

조용한 밤이면 “뿝뿌뿌”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수컷 집도마뱀붙이의 암컷에 대한 구애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용히 해라”라고 말하면 조용히 있는다.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천장 등 주로 높은 곳에서 놀고 있는 그 녀석들을 만나면 고무줄을 튕겨 쏘기도 했다.

같은 동네 어린 여자아이들은 그 녀석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나는 매일 아침,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 녀석들의 탈출 기회를 주고 있으나 별로 호응이 없다. 

내가 그다지 녀석들의 우리 집 내 기여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가운데, 매일 배설물만 남기는 녀석들이기에, 내가 스스로 녀석들이 우리 집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원으로 느낄 때까지는 응징원칙을 고수할 생각이다.

오늘도 나는 원칙대로 나의 응징기준을 적용하고 있고, 아내는 그 녀석들을 보게 되면 태권도 기합소리를 내면서 쫓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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