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 24일
나는 불현듯 길을 떠나고 싶을 때, 우리나라 남해안을 즐겨 찾는다.
특히, 거리와 시간을 고려할 때, 부담 없이 가는 곳이 통영 인근 바닷가이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섬, 욕지도.
욕지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있는 섬인데, 본섬을 비롯하여 연화도, 두미도 등 3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다도해 섬으로, 한려수도의 비경을 품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고등학교 절친 W를 만나러 길을 나선다.
W와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기에 1학년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단짝이었다.
오늘은 W와 욕지도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부산에서 통영까지는 차로 약 2시간 걸린다.
욕지도로 가는 배 시간을 맞추어야 되기에, 우리는 1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감안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W와 만나기로 약속한 동래역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주변에 형형색색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다행히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남해고속도로에는 차량정체가 없어 통영의 삼덕항에 도착하니 배 출발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란 명성에 걸맞게 남쪽 바다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삼덕항에서 욕지도까지는 배로 1시간이 소요되었다.
큰 배 안 1층에는 차량들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2층 실내에는 편안히 누울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극장식 의자가 놓인 공간, 매점도 있고, 외부 공간에는 탁 트인 바다와 주변 섬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갑판 공간이 있다.
갈매기들은, 아이들이 손가락 사이에 끼워주는 새우깡을 먹으러 배를 따라 먼바다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통영 삼덕항에서 욕지도로 가는 뱃길은 실내 공간에 머물기에는 주위 경관이 너무 멋있기에, 친구와 나는 욕지도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2층 갑판에 머물다, 도착 직전 잠시 몸을 녹이러 실내 공간에 들어갔다.
욕지도 선착장이 다가오자, 제일 먼저 ‘낚시 이야기’라고 적힌 아담한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평소 낚시꾼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았다.
점심으로 톳나물 정식을 파는 식당으로 가니, 오늘은 단체 손님을 받기로 했기 때문에 개인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식당 이름이 우리의 발길을 끄는 ‘해녀촌 식당’으로 들어갔다.
해녀는 보이지 않고, 대신 나타난 나이가 지긋한 남자 사장님은, 욕지도로 놀러 왔다가 욕지도가 너무 마음에 들어 눌러앉았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펠리컨의 머리를 닮은 바위 인근에 제작되었다는, 욕지도 출렁다리를 찾았다.
발아래 저 멀리 보이는 갯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일품이다.
이후, 아기자기한 욕지도의 일주도로를 차로 한 바퀴 돌아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숙소에 짐만 던져놓고, 친구가 준비해 온 낚싯대를 들고 인근 방파제로 향했다.
낚시 초보 두 사람은, 낚싯대를 가까스로 조립한 뒤 인조미끼를 끼워 바닷물속에 드리우는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어설픈 낚시놀이에 기가 차서 혀를 차는 물고기들의 놀림에 멋쩍어 하며, 서로 미소 띤 얼굴로 동네 횟집에 들러 고등어 회 한 접시를 사 온다.
산지에서 즉석으로 떠온 싱싱한 고등어 회와 양조장에서 직접 빚은 욕지도 명물 고구마 막걸리가 기 막힌 조화를 이룬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술술 넘어가고, 4병의 막걸리와 함께 우리의 묵은 대화도 밤과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뭔가 2% 부족함은 제1 출렁다리 앞에서 사 온 고메원 도넛이 완벽하게 메워준다.
다음날, 숙소 아주머니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우리는 천왕봉 트레킹에 나섰다.
천왕봉은 392m의 나지막한 봉우리였지만, 제법 가파른 코스와 고즈넉한 산길을 즐길 수 있는 부담 없는 코스였다.
친구와 나는 소환한 젊음을 마지막으로 불태우듯 가뿐하게 트레킹을 마쳤다.
어제 대기줄이 많았던 중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오늘은 그다지 대기인원이 많지 않다. 40분이 지나자 이름을 부른다.
얼큰한 해물짬뽕 맛이 마음에 든다.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다.
선착장에 도착해, 승선 대기 장소에 차를 주차해 두고, 인근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사 온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2층 갑판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마치지 못한 무뚝뚝하면서도 정겨운 대화를 이어간다.
통영항에 도착한 뒤, 서호시장 인근 제과점에서 통영의 명물 ‘꿀빵’ 두 박스를 사서 나눈다.
부산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위한 선물이다.
통영 욕지도는 이제, 친구와의 귀한 추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를 돌아보는 귀한 사색의 시간을 보낸 장소로, 또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