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사소한 여러 가지를 알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한가지를 안다고 했다. 나는 아직 매크로 돌리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암표라도 사야한다. 잠실야구장. 한 장 1만8천원 블루석 1장을 10만원에 판다. 4인 가족이니 40만원이다. 종합운동장역 5번 출구에서 매표소 사이에 가면 암표상처럼 생긴(?) 아저씨들이 주머니에 수백 장의 표를 갖고 수익을 창출하고 계신다.
암표상과 증권사의 영업방식은 비슷하다. 미래 수요를 예측해 베팅한다. 비라도 내리면 손실을 감수해야한다. 맨큐교수는 “부족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누려면 그 값을 가장 비싸게 평가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암표장수 편을 들었다. 차익거래Arbitrage는 사실 시장경제의 근간 아닌가. 미국은 stubHub 이런데 들어가면 티켓을 되파는 리세일표가 쏟아진다. 짤츠부르크시에는 등록된 공식 암표상이 있다.
물론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뉴욕 링컨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열리는 공연은 칼라일 그룹이 기부해 누구나 최고의 공연을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줄이 길다. 대학생 마이클이 아침 일찍 줄을 서서 표를 구한 뒤 변호사 메리에게 3백 달러에 팔았다. 메리는 1천 달러의 지불용의가 있었다. 마이클에겐 3백 달러, 메리에겐 7백 달러의 잉여가 발생했다(원래 시간으로 돈을 벌고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이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면 가난한 노부부는 5백 달러가 넘는 뉴욕 필하모닉 공연을 영원히 볼 수 없다. 중국 공공의료원의 진료를 받기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어느 임산부는 누군가 새벽부터 줄을 서 그 권리를 사고판다면 오늘도 진료를 못 볼 수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경쟁을 막는 행위(독점)도 금지하지만, 약자가 피해를 볼 경우 경쟁을 스스로 제한한다. 명문대의 기부금 입학을 제한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새해 첫날 속초앞바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숙박업소의 바가지요금을 단속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가난한 연인들도 일찍 예약했다면 저렴하게 새해 일출을 볼 수 있어야한다.
LG와 기아의 2만원 경기 티켓이 10만원에 팔렸다면 사실상 시장 실패다. 8만원의 잉여가 공급자도 팬도 아닌 암표상에게 돌아간다. 2만원에 야구를 보고 싶었던 가족들이 등을 돌리면 장기적으로 야구 시장자체가 무너진다. 비라도 내려 암표가 안팔리면 암표상이 손실을 보지만 그렇게 빈자리는 또 공급자와 팬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세금도 안낸다. 결국 직업적인 암표는 시장 실패다. ‘사회적 후생’을 약화시킨다.
최근 개인의 티켓 리세일이 당연한 미국도 한사람이 여러장 표를 되파는 것을 방지하는 법안이 나왔다. 테일러스위프트 암표 논란 때문이다. 미국의 리세일 앱은 대부분 자신이 사정이 생겨 못가면 되파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그래서 100달러 메이저리그 티켓이 30달러에 팔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기타등등의 이유로 암표를 단속하지 않은 KBO 나빠요. 집에 TV도 없는 디지털 약자는 예매도 못하고 암표도 구입하기 어려우니 티빙이나, 아 티빙도 유료화됐구나. 허구연총재 나빠요 ㅠㅠ. 예전에 팬이였..
오래전 서울연극제에서는 50% 반값 티켓을 팔았다. 나는 거기서 ‘뮤지컬 42번가’를 처음 봤다. ‘조재현의 에쿠우스’도 그렇게 봤다. 암표시장을 막을 수 있는 가격 차별은 흔히 고가 문화상품에 도입된다. 하지만 저가로 가격을 할당한 덕분에 미래의 연극팬을 만들고 그것이 또 시장의 기반을 다진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저렴한 표가 보장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