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D+30
이혼 후 새롭게 이직한 회사는 또래가 많은 곳이었다. 결혼 적령기라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 모여 있다 보니 주된 대화 주제는 결혼이었다.
남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 달달한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동료, 이미 아이가 있는 동료까지 다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동료들은 나에게 "해나 님은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물어봤다. 없다고 하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아무도 서른 살의 내가 이미 결혼과 이혼까지 겪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결혼했냐고 물어보지 않았기에 '남자친구가 없다'는 대답이 거짓은 아니지만,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찝찝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동료들끼리 가성비 있게 혼수 사는 법, 결혼식장 고르는 꿀팁 등을 공유할 때면 나도 모르게 내 경험담을 이야기할 뻔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면 나는 그냥 자리를 피하거나, 입을 다물고 애매한 웃음만 띠고 있을 뿐이었다.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10년을 쉼 없이 연애했다. 중간중간 남자친구가 없던 기간을 합쳐도 10년 중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고 시작했던 연애는, 제각각 다른 이유로 나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즐거운 시간도 많았지만 이별까지 이르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큰 고통의 시간이 존재했다.
사랑에 미성숙했던 나는 상대방이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받아주길 바랐다. 이혼하고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는 없다. 그런데 생판 남인, 고작 몇 년 만났을 뿐인 사람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나를 제일 먼저 챙겨주고, 기쁘게 해 주고, 따분하지 않게 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혼 후 온갖 감정의 폭풍을 다 겪고 괜찮아지기까지 평균적으로 2년이 걸린다고 한다.
부정, 분노, 우울, 수용까지 무수한 감정을 다 겪고 롤러코스터를 수백 번 오르락내리락해야 비로소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1년은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다. 1년은 너무 짧다고 할 수도 있지만, 스무 살 이후 싱글 상태로 3개월을 넘긴 적이 없기에 우선 1년이라도 혼자 지내보기로 했다.
다이어리를 펼쳐서 혼자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목록을 하나하나 작성해 갔다. 그동안 나의 미래에는 항상 X가 있었는데, 이제는 새하얀 도화지에 새롭게 그림을 그리는 마음이었다.
운전 연습하기 / 혼자 브런치 카페 가기 / 혼자 인생 네 컷 찍기 같은 소소한 일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까지 이어졌다.
나는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고,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내가 진정으로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지.
다른 누구의 영향도 없이 나 스스로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되었다.
흔히 어른들이 너무 일찍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한 결혼은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X를 처음 만날 때 나는 스물네 살이었고, 그와 헤어진 지금은 서른 살이 되었다. 이혼을 계기로 20대에 진작 했어야 할 나 자신 알아가기를 이제서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