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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16. 2024

우리가 일하는 만큼, 아이들도 배운다

6월: 누리달


워킹맘을 응원하다, 워킹파파를 응원하다 - 3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은 매우 강렬하다.


하지만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의 모든 첫 순간은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특히, 우리의 아이들의 첫 집단생활도 그랬다.

처음으로 아이가 입소할 곳이기 때문에 어린이집 내부에 대한 궁금증과 반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지내는 모습까지 너무너무 궁금한 게 많았지만, 방역대책으로 인해 부모들조차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문 입구에서 선생님들께 인계를 해야 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실내에서의 마스크 생활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힘들게 느껴질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에 쉽지 않은 결심을 해야 했고, 그 선택으로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출근하기 시작했다.




                    함께 출근합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엄마 아빠랑 떨어지는 것은 아무리 자주 있는 일이더라도 매번 쉽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출근길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닌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더욱 싫은 날이 분명히 있었다.

특히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은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내 옷소매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비나리를 쉽게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리라. 꼬마 히어로즈에게 붙잡힌 부모들은 시계를 수시로 쳐다보며 어린이집 야외 놀이터에서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한다. 너희들은 알까? 우리의 출근 시간이 늦어질수록 너희를 데리어 올 퇴근 시간도 늦어진다는 것을…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만큼 단순했다. 엄마아빠와 떨어지는 것이 정말 속상한 아이들이었지만, 담임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을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의 일상이다.



“비나리야~ 친구들이 함께 놀고 싶대. 선생님과 함께 들어가 볼까?”

“(한 치의 망성임도 없이) 네!”



현관 유리문 너머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선생님을 따라 들어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항상 가벼웠다.




         어린이집, 그 안을 들여다보니


비나리가 처음 입소할 시기엔 모든 것이 줌(Zoom)으로 진행되었다. 모두가 어색해했고, 걱정이 많았다. 불편한 것은 학부모만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선생님들도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고, 그런 선생님들께 다가가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리고 또 우리 아이가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곳’에서 매일 어떤 일과를 보냈는지, 아직은 말이 서툰 어린 자녀를 보낸 부모의 마음은 더 걱정되었을 것이다.


불안함 속에서 나는 늘 어린이집이 궁금했지만, 다행히도 방역지침에 따라 천천히 아이들의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걱정한 것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그 놀이 공간에서 나는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아이들의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억 속 내가 어릴 적 다니던 유치원은 매우 컸다. 나는 그곳에서 항상 뛰어다녔고, 온 에너지를 방출하며 일과를 보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이 된 후 우연히 다시 유치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너무 작아서 놀랐다. 유치원을 다니던 그때는 그곳이 나의 전부였고, 가장 큰 공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큰 것인지 유치원이 작아진 것인지 그 기억 속의 장소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 너무 행복했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아이들도 언젠가는 지금의 소중한 공간들을 아름답게 추억하지 않을까.




   우리가 일하는 만큼, 아이들도 배운다


사랑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상호작용으로 인한 영향을 받는다. 존중받는 법을 배우고, 존중하는 법도 배운다. 여러 가지 역할 놀이를 통해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타인 중심적 사고방식을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사소한 마찰로 ‘배려’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하원 후 아이들이 장시간 단체 생활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고 밝았던 이유는 단순히 좋은 시설에서 케어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하원길에 선생님으로부터 ‘오늘은 비나리와 함께 [동생에 관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라고 안내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비나리가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동생을 미워하면 엄마는 속상해요?

동생은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동생을 때리면 엄마도 마음이 아파요?

나도 동생을 사랑하면 좋겠어요? “


말 못 하던 시기에 시작된 어린이집 생활에서 비나리는 많은 것을 배워왔다. 벌써 말도 잘하고, 대소변도 가리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려보려고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우리가 일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출근합니다.



해님이 왔다. 비나리는 아침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해님이 왔네. 이제 나갈까? 엄마는 회사 가고, 나랑 아기는 어린이집으로 가자 “라고 먼저 말해준다.

팬데믹 시기에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설렘보다 걱정이 더 강했지만, 두 번째 선택에서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욱 강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우리 둘째는 어린이집 등원 이틀 만에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스스로 어린이집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벗는다.

이른 아침마다 채 쉽게 떠나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뜨기 위해 비비면서 일어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또 그곳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걱정과 안쓰러움보다는 안심과 기대감이 더 크다.

일과 중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기에 미안한 마음과 걱정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걱정 대신 ‘선생들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응원해 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부모들보다 더욱 아이들을 잘 이해해 주고, 부모만큼이나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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