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Nov 17. 2024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현재)

12월: 매듭달



               타임머신을 타고 -3부-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언제부터 걸어 다녔을까.


세상에 태어날 때 엄마가 받는 고통만큼 아기들도 똑같이 힘들다는데, 나는 엄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어떤 각오로 세상 밖으로 나왔을까.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였을까.

기저귀 찬 아이들을 보며 나는 언제부터 스스로 생리현상을 조절하기 시작하였으며,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구분하여 먹기 시작하였을까.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일까?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원래‘라는 것은 없고,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은 없다.


나의 기억은 스스로 먹고, 자고, 싸는 것이 모두 가능할 때부터 있지만,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엄마는 열 달 동안 무거운 몸으로 평소와는 다른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아빠는 밤새 아팠던 나를 위해 병간호를 했으며, 알 수 없는 행동을 이어가는 나를 키우기 위해 나의 엄마와 아빠는 함께 많은 시간들을 함께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짠’ 하고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충분한 노력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자에서 엄마로, 남자에서 아빠로


겨울이 왔다. 추운 날씨에 움츠러든 어깨를 펼 시간조차 없이 연말은 더욱 바쁘게 돌아간다.


한해의 성과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에서도 분주하다. 무엇 하나 소흘하게 할 수 없기에 바쁘게 달려온 나를 위해 나는 연말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곤 했다.

혼자 조용히 차분한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곰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자기 또는 좋아하던 드라마의 정주행 등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 말이다.

그러나 소박하지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던 ‘나 홀로 집에’ 휴가는 더 이상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부모’라는 직업을 얻고 나서, 나의 주말과 일상은 모두 ‘아이들’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휴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주말 출근‘을 위해 회사에서는 휴일 근무 상신을 올리고, 집에서는 구두 품의 상신과 함께 초코과자를 바친다.


구두 품의 상신자: “엄마가 오늘 축근하면 퇴근길에 초코과자를 사 올 수 있는데, 출근해도 될까?”

결재권자(비나리): “쪼꼬과자 두개요!!”
합의(동생): 나 나 나도나도

구두품의 상신자: 으응! 엄마 열심히 일하고 두 개씩 사 올게. 동생 것도 똑같이 사 올게!

결재자, 합의자: 예~ 눼~!



아이들이 잠든 후 남편은 열심히 연말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더 이상 나를 위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알아보거나, 크리스마스에 함께 시간을 보낼 장소와 티켓을 예매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키즈존 식당과 산타할아버지가 보내줄 레고장난감을 주문하고 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여자에서 엄마로, 남자에서 아빠로 살고 있다. (변화된 우리 삶이 궁금하다면? 1-3월 글 참조)





워킹맘마를 응원하다, 워킹파파를 응원하다



부모가 되면, 늘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많아진다. 더욱이 나의 경우, 어린아이를 기관에 의지한 채 근로자로서의 책임을 다 하기로 결심한 후, 나는 복직과 동시에 아이에게는 더 미안한 감정이 커졌다.

이러한 미안함을 나는 어떻게 대신해 주어야할지 몰랐고,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으로 나는 내가 부재한 시간들에 대해 장난감으로 보상해주었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당연한 듯, 나의 길어진 야근에 대해서 장난감을 고르며 달래려고 하였다. 쌓여가는 장난감의 수만큼 아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또 딜레마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선물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정했던 규칙을 바꿀 수도 없었고, 그간 외로웠던 아이의 빈 시간을 대체할 무엇도 찾지 못한 채 나는 덜커덕 겁이 났다.


아이는 여전히 어렸지만, 나의 걱정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나의 뜻을 잘 이해해주었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 이제 더는 못사!”라는 우리의 푸념에는 “약속했잖아! 회사 다녀오면 사준다고 했자나요~!“ 라고 반박을 했지만, 나에게 고민이 있다는 말에 비나리는 여느 때와 다르게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비나리야. 더 이상 장난감을 둘 곳이 없어서 우리는 곧 작은 집으로 이사가야갈지도 몰라.“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이제부터 장난감을 사지 않으면 어떨까? 대신 놀이동산에도 가고 물고기도 보러가는 거야!“

“장난감을 안사면? 물고기를 보러갈 수 있떠?”

“응. 맞아! 쉴 수 있을 때는 비나리가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

“쪼아! 나는 이제 장난감을 더 안사고, 있는 장난감으로 놀래요!”


쌓여가는 장난감이 나를 불안하게 하였지만, 아이는 많아진 장난감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줄 알았고, 동생과 사이좋게 나눠갖는 법 등 나의 부재된 시간 속에서도 나름대로 규칙을 배우며 기다리고 배움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마트에서도 수많은 장난감을 보면서도 사지 않고 참을 수 있을만큼 성숙해졌다. 착한 어린이를 위해 곧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실거라고 믿으면서.


그러니 우리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아이들은 때가 되면 장난감 없이도 우리를 기다릴 줄 알 만큼 자란다. (워킹맘마, 워킹파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4-6월 글 참조)




                  아이마음 이해하기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협상한 바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맞춰주며, 믿고 기다려주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의 감정조절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잠투정의 전쟁은 누워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는 등센서를 On 하여 부모에게 수발을 들도록 하였으나, 이미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미해결 문제이다. 잠이오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소리를 지르거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난폭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장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두 아이의 졸린 타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 명이 잠들만하면 다른 한 명이 깨고, 서로를 깨우면서 잠들 타이밍을 놓쳐 결국엔 밤늦게 자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또 출근 전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반속 속에 아빠도 지친 것인지. 어느 날, 셋이서 서로를 향해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아빠가 내꺼 뺏었어요. 혼내주세요!”

“여보. 첫째가 둘째꺼를 먼저 뺐았어요. 혼내줘요!”

“음마. 음마. 형형. 아빠아빠 형형”


순간 너무 귀여워서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내 웃음에 셋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 같이 웃기 시작했고, 그렇게 남자 셋의 다툼의 종료되었다. 가끔은 아빠도 아들이 된다던 다른 집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아빠도 때로는 첫째와 힘겹게 싸우며 자기 것을 지키려는 둘째 마음이 이해된다면서 말못하는 둘째 마음이 이해된다면서 말못하는 둘째를 대신해 첫째와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남편은 아이마음 이해하기를 실천하고 있다. (더 많은 아이마음이 궁금하다면, 7-9월 글 참조)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1987년 봄에 태어났다. 나를 내가 태어난 그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추억을 통해- 그리고 내가 출산의 과정을 겪으면서 엄마의 고통과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나리가 울음으로 탄생을 알렸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에 남편은 울었고, 나의 출산 소식을 듣고 나의 엄마도 울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고, 언젠가 나도 비나리의 자식이 태어나게 되면 그때는 울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된 시기는 다르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견줄 수 가 없다. 과거의 육아에 대한 인식과 육아 방법 등 또한 많은 것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 이다.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나의 추억과 상상으로 만나보았고, 현재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과거의 미래의 육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10-11월 글 참조)

이것이 현재 진행형 나의 육아 이야기이고, 나의 육아는 계속된다.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신나게 하고 온 비나리가 현관에서 두 눈을 가리더니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라면서 해맑게 웃으면서 들어왔다. 아직 발음이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 뜻을 우리보다 넓게 받아들인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예쁜 꽃을 피워주고 있다.

~ 부모가 되었다는 증거 ~

1.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처음 본 무모와는 쉽게 대화하고 있을 때

2. 아이 물품 구매로 나의 쇼핑 욕구를 채우고 있을 때

3. 핸드폰에 셀카 사진 대신 아기들 사진으로 꽉 차 있을 때

4. 외식할 때 분위기 좋은 맛집 대신 아기들 메뉴나 놀이공간이 있는 곳을 알아볼 때


그동안 ‘비나리의 육아일지’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여전히 육아 진행중인 부모님들과 예비 부모님들 모두모두 파이팅!

모두모두 행복한 육아ing 하세요!




-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시간이 흘러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