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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

by 송유성

안녕 나는 요즘 파프리카처럼 살아

피망이 아니고 파프리카처럼 살아


우후죽순 태어나는 모든 것을 먹으려다가 자주 체하고 자주 주저앉지만 그래도 나는 대체로 파프리카처럼 살아 단 음식을 자주 먹으면 건강 같은 걸 하기에 곤란하니까 사람들은 파프리카를 우적우적 씹어 먹을 때도 있어서 파프리카 유행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파프리카처럼 살아


어느 해에는 홍수가 나서라든지 어느 해에는 가뭄이 들어서라든지 상관없이 나는 하우스의 파프리카처럼 살아 파프리카처럼 살면 나는 반으로 쪼개면 이빨, 같은 것이 드러날 때도 있어서 자주 숨겨야 하지만 애인 앞에서는 빨간 파프리카가 두 개 노란 파프리카가 하나 들어있는 파프리카 묶음처럼 사랑은 두 개고 당신과 함께 동반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인, 그렇지만 파프리카여서 들키지는 않는 것처럼 살아

파프리카처럼 살면 순진무구할 수 있어서 좋아 아니 순진무구한 척하는 거겠지만 남들은 나를 파프리카로만 보니까 파프리카는 누군가를 찌르거나 상처 주거나 마음만 빼앗았다가 홱 하고 돌아서 버리는 아픔이 있는 이기적인 애인처럼은 보지 않으니까 쉽게 나를 장바구니에 넣어 나는 그런 것이 좋아서 점점 더 진짜 파프리카가 되는 것 같기도 해


나는 사실 음흉한 성장을 꿈꿔 우리나라만큼 거대한 파프리카가 되어서 사실 정복, 그러니까 당신 하나도 못 정복. 이었으면서 모두를 정복해서 파프리카 법을 세울 음흉을 품고 살지 그 나라에선 아무도 나를 떠날 수는 없어 내가 파프리카고 내가 법이기 때문이야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한 번도 먹어지지 못해서 빈 그릇에 동그마니 남아있는 파프리카는 되지 않을 것 같지


이런 것은 모두 비밀로 하고 순박하고 해맑은 척

반짝거림만 표방한 채로

안녕 요즘 나는 파프리카처럼 살아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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