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몰려온다. 그 시절 예뻤던 녀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준아! 밥은 먹고 가야지.
휙 뒤돌아서는 뒷모습에 미안함이 몰려온다.
그 시절 예쁜녀석이 떠오른다.
아들에게 올 것이 왔다. 살면서 한 번은 겪는다는 ‘사춘기, 중2병’
‘~해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 자기 몫은 성실히 하던 녀석이 사라졌다.
나를 바라보며 웃던 눈은 핸드폰을 보며 히히덕 거린다.
오늘도 아들 녀석은 부스스 걸어 나와 습관처럼 식탁을 마주했다. 밥 한 숟가락 입에 물고 3분이 지나도록 씹지도 않는다. 핸드폰에 고정된 눈과 손만 빠르게 움직인다. 며칠 동안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이 꿈틀거렸다.
“준아, 너 학교 안 갈 거야? 빨리 먹어.”
“네~에, 알았다구요.”
“이 녀석, 알긴 뭘 알아. 게임이 그리 좋으면 학교 다니지 마. 종일 게임하고 놀아. 머릿속에 게임만 있는데 뭔 공부를 해. ”
잔소리는 마그마처럼 뿜어져 나왔다.
“엄마, 그만해. 귀 아파서 머리까지 울리잖아.”
아들 녀석은 벌떡 일어나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건강해야지 공부도 할 수 있는 거야. 핸드폰보다가 밥도 안 먹고 잘하는 짓이다.”
말이 제멋대로 나갔다.
“잔소리 듣다가 지각하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아이는 가방을 둘러메고 휙 나가버렸다.
체한 듯 답답한 오전을 보냈다. 청소를 하면 내 마음도 조금 비워지고 후련해지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아이방에 들어갔다. 책장 한켠에 놓인 낡은 노트에 눈길이 쏠렸다. 아이의 그림일기였다. 일기장에는 햄스터를 사고 기분 좋았던 날, 도서관에서 친구를 만나 즐거웠던 시간, 벚꽃이 만발한 봄날... 많은 추억이 담겨 있었다.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우리 아기 언제 이리 컸니...'
모든 순간이 그리움으로 가슴을 파고 들었다.
초등학교1학년- 햄스터 산 날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들과 행복했던 시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 감정싸움을 하면 관계가 엉망이 되는데, 오늘 아침 '나는 왜 그랬을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줄걸' 후회가 밀려왔다.
하교 후 저녁도 못 먹고 학원에 간 아들이 아른거린다. 쏴-아 쏟아지는 빗소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우산도 없이 집에 오는 아이가 맘에 걸려 학원으로 갔다. 아이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해쓱했다.
“준아, 너가 예전보다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조금 자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엄마가 심하게 말해서 속상했지? 미안하다. 오늘 고생했어.”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이는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엄마, 저도 죄송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게임은 안 할게. 대신 호떡 먹고 싶어요.”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나왔나 보다. 엉뚱한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 호떡 먹고 싶어? 이 근처 호떡 파는 곳이 없는데.”
“비오니까 예전에 엄마가 만들어 준 호떡이 먹고 싶어.”
조금 전까지 아들과 잘 지내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차마 ‘호떡은 안돼. 귀찮아서 못 만들어.’ 이럴 순 없다.
밤 10시. 나와 사춘기 아들은 나란히 서서 반죽을 했다. 반죽을 넓게 펴서 갈색 설탕을 듬뿍 넣고 동글동글 빚었다. 노릇노릇 익은 호떡을 먹으며 아들 녀석이 엄지척을 한다.
“우와, 엄마가 만든 호떡이 제일 맛있어. 엄마 나중에 호떡 장사해도 될 것 같아.”
활짝 웃는 모습이 사춘기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정하다. 반죽하는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거리는 아들이 반갑다.
나는 일주일째 호떡을 굽고 있다.
내일은 사춘기 아들과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호떡을 만드는 야심한 시각이 기다려진다.
'사춘기 아들, 우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
집안에 달큰한 냄새가 진동한다. 잔잔한 행복냄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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