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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verse Sep 08. 2024

[노벨상의 과학사] 천재들의 로맨스, 방사능과 라듐

190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피에르 퀴리

노벨상의 역사에서 부부가 함께 동반 수상을 했던 경우는 지금까지 모두 3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벨 물리학상으로 한정 지으면 단 1번의 공동 수상 밖에 없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피에르 퀴리가 바로 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피에르 퀴리는 1903년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방사선에 대한 공동연구"란 주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라듐 발견을 다루는 대부분의 경우 마리 퀴리에 대해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피에르 퀴리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자.


앞서 살짝 언급했듯이 피에르와 마리가 노벨상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라듐의 발견이었다. 다른 원소도 아니고 라듐이 특별했던 이유는 라듐의 강력한 방사능에 있다. 피에르와 마리의 발견 이전에 앙투안 앙리 베크렐에 의해서 우라늄에서 방사능이 발견됐지만 우라늄이 자발적으로 방출하는 방사선은 꽤 약했으며 베크렐 선은 X-선과 아주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실제로 베크렐은 사진판이 우라늄에서 자발적으로 방출된 전자기파와 반응하는 현상을 통해서 방사능을 발견했는데 방사선 중 감마선은 그저 X-선보다 에너지가 강한 전자기파에 불과했다.


실제로 베크렐의 발견은 발견 당시에는 학계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피에르와 마리의 라듐의 발견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그 이유는 라듐이 우라늄보다 무려 200만 배 더 큰 방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방사선의 자세한 실체를 밝히는데 유용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피부에 화상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라듐에서 방출되었는데 지난 글에서도 다뤘듯이 어떠한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 물질 자체가 스스로 이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했기 때문에 많은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라듐의 발견에 대한 피에르의 역할을 알아봐 보도록 하자.



피에르는 라듐의 발견 이전에도 물리학에서 중요한 발견을 많이 이뤄냈었다. 대표적으로 강자성체를 가열하면 특정 온도를 넘어갈 경우 자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피에르가 발견했으며 자성을 잃어버리는 온도를 퀴리 온도라고 한다. 이외에도 결정에 압력을 가할 경우 압력에 의해서 물체에 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압전 효과라고 부르며 이 효과 또한 피에르가 형인 자크 퀴리와 함께 발견한 현상이었다.


피에르가 압전 효과를 발견할 무렵 마리는 박사 과정을 진행 중인 학생이었다. 당시 마리의 연구 주제는 베크렐이 발견한 방사능이었다. 마리가 특히 관심을 가지던 대상은 피치블렌드라는 광석이었다. 마리는 피에르의 압전 효과를 이용해서 피치블렌드의 방사능이 피치블렌드 내부의 우라늄 함량에 비해 강함을 발견했다. 마리는 이 현상을 두고 우라늄 이외에도 방사능을 가진 원소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피에르는 이러한 마리의 발견에 흥미를 가졌고 기존에 진행하던 압전 효과 연구들을 그만두고 마리와 함께 새로운 방사능 물질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둘은 퀴리의 가설대로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강한 방사능을 가진 어떤 물질이 피치블렌드에 함유되어 있다고 생각해 이 물질을 피치블렌드로부터 분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피에르는 물리적인 방법을 이용해 물질들을 분리했으며 피치블렌드에서 추출된 물질들의 방사선을 측정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결국 둘은 피치블렌드에서 비스무트와 비슷한 특성을 가지면서 우라늄보다 300배 강한 방사능을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 이들은 새로운 물질에 마리의 조국인 폴란드의 이름을 따 '폴로늄'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뒤이어 바륨과 비슷한 성질을 가진 새로운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고 엄청난 방사선을 방출했기 때문에 빛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adius'에서 따와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피에르는 라듐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는데 힘썼다. 라듐은 라듐 1그램당, 시간당 약 100칼로리 정도의 열을 지속적으로 방출했다. 이 에너지는 화학적인 효과에 의해 방출되는 열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엄청난 에너지였다. 심지어 라듐의 에너지 방출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세기가 줄어들지 않고 균일하게 방출됐다. 피에르는 연 단위의 시간이 지나도 에너지의 세기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추측했었다. 이는 라듐의 에너지 방출이 물질 간의 화학적 결합에 의한 현상이 아닌 물질 자체에서 기인함을 의미했다.


피에르는 방출된 열이 라듐 원자 자체의 변형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변형은 매우 느린 속도로 일어나 몇 년이 지나도 아주 극소량의 라듐만 변형되기 때문에 앞서 설명했듯이 일관된 에너지 방출 현상이 일어나며 이는 라듐의 에너지 방출이 화학적 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했다. 극소량의 재료로 대량의 에너지를 생산해 낸 것이다.


더욱이 피에르는 이 현상이 화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화학에서 원소란 변하지 않는 물질의 최소 단위였다. 하지만 라듐의 방사선 방출 현상은 라듐 원자가 붕괴되어 다른 원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다. 즉, 원소들이 다른 원소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에서야 원자의 구조가 밝혀져있지만 당대에는 원자론마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우라늄과 달리 라듐에서는 충분히 강한 방사선이 방출되었기 때문에 방출되는 방사선의 특성을 연구하는데 용이했다. 특히 피에르와 마리는 베크렐 선이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라는 세 종류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으며 후대에 밝혀진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베크렐의 업적을 다룬 글에서 다룬 바 있었다.



피에르와 마리는 방사선에 자기장을 걸어 방사선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살펴봤고 그 결과 알파선은 양전하, 베타선은 음전하를 띠고 있음을 발견했으며 감마선은 X-선과 마찬가지로 외부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성질을 발견했다. 특히 자기장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가를 통해 알파선은 베타선보다 수천 배 무겁다는 사실도 발견했는데 이는 현재 알려진 헬륨 원자핵과 전자 간의 관계와 일치하는 결과이다. 피에르는 방사선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거의 근접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베타선에 대한 발견이 매우 중요했다. 피에르는 베타선이 음극선과 유사함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실험에서 구해진 베타선의 질량이 조지프 존 톰슨과 올리버 헤비사이드가 제시한 '전자'와 동일함을 밝혀냈다. 이는 전자의 실재성에 대한 증거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으며 실제로 피에르는 이 발견이 앞으로 물리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견했었다.


이외에도 퀴리 부부가 발견한 방사능의 특이한 특성 중 하나로 유도 방사능 현상이 있다. 이들은 강력한 방사선을 내뿜는 라듐 주위에 방사능을 가지고 있지 않는 고체를 가져다 둘 경우 이 고체가 일시적으로 방사능을 띠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현대에는 방사선의 에너지가 고체 원자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방출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레이저를 발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었다. 이 레이저의 발명 또한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추후 다뤄보도록 하자.


유도 방사능 현상에 대한 연구는 피에르, 마리 퀴리 부부의 딸인 이렌 졸리오 퀴리와 사위인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가 이어받아 더 상세히 연구되었다. 이렌 졸리오,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 부부는 유도 방사능을 일으키는 원리와 방법을 알아냈고 유도 방사능을 발견했다는 업적을 인정받아 193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 수상이 두 번째 부부의 노벨상 공동 수상이었다.



피에르와 마리의 발견 이후 라듐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됐다. 유해성이 알려지기 이전까지 형광 페인트, 화장품, 치약 심지어는 라듐을 첨가한 물이 유행이었다. 사실 웬만한 곳에 전부 라듐을 한 번씩 사용해 봤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사실 피에르는 라듐의 위험성을 일찍이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라듐의 유해성을 본인의 몸으로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성에 대해 많은 경고를 해왔었다.


가장 먼저 독일인 프리드리히 발코프와 프리드리히 기젤에 의해 라듐에 의한 피부 손상이 발견되었으며 베크렐 또한 재킷 주머니에 넣은 라듐에 의해 화상을 입은 바 있었다. 피에르는 이러한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10시간 동안 라듐 방사선에 노출시켰으며 이로 인해 팔에 화상이 발생함을 발견했다. 이렇게 발생한 화상은 치유되는데 몇 개월이나 걸렸으며 팔에는 영구적인 화상 흉터가 남았다. 


실제로 노벨상을 수상할 무렵 피에르는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었다고 전해진다. 피에르의 손은 라듐가 너무 많이 접촉해 피부가 벗겨져있었고 옷을 제대로 입기 어려웠다고 한다. 주변인들은 그의 팔이 수많은 흉터로 얼룩져있었다고 증언했었다. 또한 다리를 떨어 똑바로 서있기 어려워했으며 자율신경 실조증을 진단받았다고 한다. 피에르뿐만 아니라 마리 또한 손가락의 피부에 금이 가고 흉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라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두 부부는 라듐의 발견을 자랑스러워했고 피에르는 주변에 보여주기 위해 항상 주머니에 라듐을 넣고 다녔으며 마리는 은은하게 빛나는 라듐을 침대 주위에 놓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두 부부의 연구 노트는 잦은 라듐 방사선 노출로 인해 현재까지도 방사선을 내뿜고 있고 방호복 없이는 접근조차 금지될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 피에르는 실제로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라듐 광선은 특정 질병의 치료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 작용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몇 센티그램의 라듐 염을 주머니에 몇 시간 동안두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15일 후 피부에 발적이 나타나고 치유하기 매우 어려운 상처가 생깁니다. 더 오래 방치하면 마비나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라듐은 두꺼운 납 상자에 넣어 운반해야 합니다. 라듐은 범죄자의 손에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인류가 자연의 비밀을 아는 것이 유익한지, 이익을 얻을 준비가 되었는지 또는이 지식이 해롭지 않을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노벨의 발견 사례는 강력한 폭발물이 인간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사람들을 전쟁으로 이끄는 범죄자들의 손에서 끔찍한 파괴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노벨과 함께 인류가 새로운 발견을 통해 해악보다 유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피에르와 마리가 활동할 당시에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이 꽤 뿌리 깊게 존재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이러한 성차별로 인해 마리는 폴란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없었다. 피에르는 마리를 설득해 파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도록 도왔으며 마리는 파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피에르와 협력했고 라듐을 발견하는데 이르었다. 라듐의 발견에 대한 마리의 지대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여자라는 이유로 당시 런던의 왕립 연구소에서 자신의 업적에 대한 연설을 금지당했고 피에르만 발표했다.


실제로 1903년 노벨 물리학상 또한 처음에는 베크렐과 피에르에게만 수상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에르는 마리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노벨 재단에 깊은 불만을 표현했다. 심지어 피에르는 마리가 같이 수상하지 않는다면 노벨상을 거절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결국 노벨 재단은 마리의 업적을 인정하고 마리의 이름이 수상자 목록에 올렸다. 그렇게 마리는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서로의 진심 어린 이해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1906년 피에르는 출근길에 음주 운전 마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그 자리에서 마차 바퀴에 깔려 사망했고 이 소식을 들은 마리는 심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전해진다. 파리 대학교는 피에르를 위한 교수직을 마리가 이어받도록 요청했으며 마리는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세계적인 레벨의 연구실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교수직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마리는 파리 대학교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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