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존 윌리엄 스트럿(레일리 경)
1904년 노벨 물리학상은 "가장 중요한 기체의 밀도에 대한 연구와 아르곤의 발견"에 대한 업적으로 존 윌리엄 스트럿(혹은 레일리 경)이 수상했다. 레일리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하늘이 파란 이유를 설명하는 '레일리 산란', 양자역학의 시발점이 됐던 흑체 복사에서의 '레일리-진스 이론'(레일리는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 이론이 흑체 복사를 설명하지 못함을 알아냈다.), 지진파와 같은 고체 표면에서의 진동 운동을 표현하는 '레일리 파' 등 고전 물리학에서 중요한 업적들을 다수 남겼다. 이번 글에서는 레일리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왜 하필 아르곤의 발견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됐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레일리가 주로 관심을 가졌던 연구 분야 중 하나는 기체의 밀도 측정이었다. 물리학에서 밀도란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을 의미한다. 고체나 액체와 같은 물질에서도 쉽사리 밀도를 측정할 수 있지만 레일리가 특별히 알고 싶어 했던 주제는 기체 상태에 있는 물질의 밀도였다. 대표적으로 산소나 질소와 같이 대기 중에서 흔히 발견되는 기체의 밀도를 측정하고 싶었다. 레일리가 기체 상태의 물질의 밀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기체의 밀도를 다루는 이론인 '아보가드로 법칙'에 대해서 이해해 보자.
아보가드로 법칙이란 기체는 종류에 관계없이 같은 온도, 같은 압력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같은 부피 안에 같은 개수의 기체 분자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아보가드로 법칙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예시를 보자. 동일한 실험실에서 똑같은 유리병을 준비하고 한쪽에는 산소를 가득 채우고 다른 유리병에는 질소를 채우자. 동일한 실험실이므로 유리병 주변의 온도와 기압은 똑같으며 같은 유리병이기 때문에 기체의 부피가 같으므로 아보가드로 법칙의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리병 속의 기체 분자의 개수를 세면 산소와 질소 분자의 개수가 동일하다는 법칙이다. 실제로 대기에서 발견되는 기체의 경우 아보가드로 법칙을 매우 정교하게 따른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온도, 같은 압력 아래에서 입자의 개수는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일정하기 때문에 같은 조건 아래에서 질량이 큰 분자로 이루어진 기체의 경우 기체의 전체 질량은 질량이 작은 입자로 이루어진 기체보다 훨씬 질량이 크다. 기체의 전체 질량은 각각의 분자의 질량에 분자의 개수를 곱한 값으로 주어지기 때문인데 우리가 실제로 측정할 수 있는 값은 기체 전체의 무게이므로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밀도를 측정한다는 것은 분자 하나의 질량을 측정하는 것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당대 발견된 놀라운 사실은 기체 밀도를 실체로 측정했을 때 기체들 사이에 특이한 관계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표적으로 윌리엄 프라우트는 기체 원소들의 밀도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 원소 밀도의 정수배를 가진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레일리가 노벨상 연설에서 제시했던 대표적인 사례는 산소의 밀도로 헨리 레놀트가 측정한 15.96이었다. 레일리는 실험적 오차를 고려할 경우 정수인 16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에는 분자론으로 실험 결과들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분자론이 확고한 정설은 아니었고 기체 밀도 사이의 관계성은 현상이 분자론을 지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레일리는 프라우트의 가설을 입증하고 싶었다. 레일리는 레놀트의 방법을 따라서 수소와 산소의 밀도비를 아주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러나 레일리의 실험 결과는 레놀트와 달리 15.88이라는 좀 더 낮은 결과를 도출했다. 심지어 레일리와 독립적으로 진행된 다른 실험에서도 레일리와 마찬가지로 레놀트의 실험 결과보다 더 낮은 결과가 나타났다. 레일리는 예상과 다른 결과에 당혹스러웠지만 이러한 결과를 뒤로하고 산소보다 실험이 더 쉬울 것으로 생각됐던 질소로 눈길을 돌렸다. 산소는 실험이 어려웠기 때문에 발생한 오차라고 생각하고 질소를 통해서 프라우트의 가설을 입증하려 했다.
대기 중에서 순수한 질소를 얻어내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레일리는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 질소를 추출한 다음 각 질소의 밀도를 측정한 뒤 비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레일리가 사용한 첫 번째 방법은 대기 중에서 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산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의 잡다한 기체를 제거하고 남는 질소를 추출해내는 방법이다. 대기의 78%는 질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방법은 쉬우면서도 상당히 순수한 질소를 공기 중의 질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다른 방법은 액체 암모니아에 산소를 반응시키는 방법이다. 암모니아의 수소가 산소와 반응해 떨어져 나가고 남은 순수한 질소만 추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실험을 아무리 반복해도 두 방법 사이에 아주 작지만 일정한 오차가 계속해서 발견됐다. 화학적으로 추출한 질소의 밀도가 공기 중에서 추출한 질소의 밀도보다 대략 0.5%가 낮았는데 이는 오차가 실험적 오류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실제로 레일리는 이 문제에 크게 당혹스러워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네이처에 싣기도 했다. 이윽고 레일리의 실험 결과를 알게 된 윌리엄 램지는 이 문제가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중성 입자로 이루어진 기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레일리 또한 문제의 원인이 질소의 추출 공법 차이에 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방법은 공기 중에서 추출한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암모니아를 통해 질소를 추출했기 때문에 레일리는 대기에 있는 불순물에서 오차가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일리는 1795년에 헨리 캐번디시가 정전기를 이용해 공기 중에서 산소와 질소를 제거하자 정체불명의 작은 기포가 나타났다는 실험 결과를 발견했다. 당시 캐번디시는 이 기체가 다른 기체와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기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레일리는 공기 중에 질소보다 무거운 미지의 물질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암모니아를 통해 추출할 때 산소를 반응시키지 않고 공기를 반응시켰다. 여러 기체가 섞인 공기를 반응시킬 경우 질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정체불명의 불순물이 들어가 공기 중에서 추출한 방법과 동일한 결과를 줄 것이다. 실제로 레일리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레일리는 프라우트의 가설을 입증하는 것보다 새로운 기체를 추출하는 더 중요한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레일리는 캐번디시의 방법을 재현했으며 동시에 가열된 마그네슘을 이용해서 질소와 산소를 제거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레일리는 두 방법 모두에서 정체불명의 기체를 추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 기체는 대기 중에서 약 1%의 비중을 차지하며 화학적 방법을 통해서는 공기 중에서 분리해 낼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공기에서 다른 기체를 제거하고 남는 기체를 추출해 내는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었으며 이는 이 기체가 어떠한 원소와도 화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 새로 발견된 원소에 게으르다는 의미를 담아 '아르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레일리가 발견한 아르곤의 놀라운 특성은 아르곤의 비열이 엄청 높다는 점이었다. 비열은 물체에 가해진 열에너지 대비 온도가 증가 비율을 의미하는데 온도는 입자들의 평균 운동 에너지이므로 비열이 높다는 뜻은 열에너지를 가할 경우 대부분의 열에너지가 입자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실제 입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운동 에너지를 증가하는데 에너지가 쓰이지만 일부 에너지는 입자의 회전 운동 에너지나 원자 사이의 진동 운동 에너지로도 전환된다. 비열이 높다는 것은 아르곤에 가해준 에너지 중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전 운동은 경우 입체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질수록 영향이 더 크며 진동 운동 또한 결합된 원자가 많을수록 영향이 커진다. 그러나 아르곤은 반대로 회전 운동이나 진동 운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열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는 아르곤이 단원자로 존재함을 암시하며 실제로 아르곤의 발견은 첫 비활성 단원자 기체 혹은 귀족 기의 발견이었다. 비활성 기체들은 상온에서 기체로 존재하고 다른 원자와 화학적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견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다. 아르곤 이전에 태양을 관측하는 과정에서 비활성 기체인 '헬륨'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당시 기술로는 지구에서 헬륨을 발견할 수 없어 비활성 기체라는 특성을 몰랐었다.
이후 램지는 헬륨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뒤이어 '네온', '크립톤', '제논'과 같은 다른 비활성 기체들을 추가로 발견했다. 당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는 원소들 사이의 화학적 유사성을 이용해 원소들의 종류를 분류하고 있었는데 레일리와 램지의 발견을 접하고 원소의 분류 체계에 비활성 기체의 분류를 추가했다. 비활성 기체족의 추가로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헨리 모즐리에 의해 약간의 수정을 거치면서 현대적인 형태의 주기율표가 완성됐다.
비활성 기체가 화학적 반응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닐스 보어에 의해 설명됐다. 보어의 원자 모형에 따르면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전자들은 정해진 궤도에 정해진 숫자만 존재할 수 있는데 궤도에 빈 공간이 있을 경우 화학적으로 불안정해 다른 원자와 결합해 궤도의 빈 공간을 채우고 화학적으로 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비활성 기체는 해당 궤도에 전자가 가득 차서 더는 자리가 없는 원자들로 독자적인 상태에서 화학적으로 안정하기 때문에 화학 결합을 하지 않는다.
아르곤의 발견은 물리학과 화학 두 학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됐다. 특히 비활성 기체의 발견은 원소들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당대 레일리가 사용했던 정밀하면서도 섬세한 실험 기법과 작은 오차를 통해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물리학계에서 크게 인정을 받아 190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비활성 기체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다른 비활성 기체들을 추가로 발견한 램지는 같은 연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