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니 처음엔 ‘우와-!’ 했던 풍경들도, 낭만 있던 구시가지도, 유럽 건축물들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동유럽 여행은 내게 약간의 지루함을 가져다주었다. 설상가상 빵지순례라는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빵을 먹다 보니 아무리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라 하더라도 빵이 물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너무 열심히 한 것 같아.’ 여행에도 쉼에 필요하다! 그리하여 독일에선 관광지를 찾아다니지도, 빵 먹는 것에 집착하지도 않기로 했다. 어느 날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하루 종일 숙소에서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늦잠을 잤다가 하루 끝에 기어 나와 가볍게 동네 산책만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래도 안 먹진 않았습니다. 당연히 쉬더라고 뭐라도 먹긴 먹어야지! 마트에서 장 볼 때 나는 무엇을 샀느냐. 아이러니하게도 빵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으나 독일 사람들의 주식이 빵인 관계로 나도 원하든 원치 않든 빵을 먹게 되었다. 내가 고른 곡물이 잔뜩 묻힌 호밀빵. 양도 많은데 1유로 밖에 안 한다. 독일어의 단어들은 정말 너무 길고 어렵다. 이 빵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는 사실. 호밀빵을 밥으로, 햄이랑 치즈를 반찬으로 사서 같이 먹었다. 내가 외국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나는 군.
마트엔 귀여운 하리보들도 왕창 있다.
한국에선 비싼 과일들도 많이 먹어 주고.
독일의 국민 간식인 커리 부어스트도 먹어 보았다. 오스트리아 소시지와 전반적으로 비슷한 느낌이었다. 또 슈바인학센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소신 발언 하자면 너무 느끼했다는 것. 그래서 절반 밖에 못 먹었다. 다 먹으려면 맥주 한 3L는 필요할 듯하다. 참고로 나는 독일 맥주 보단 벨기에 스타일의 에일 맥주를 선호한다.
아니 근데, 다니는 곳곳에 프레첼이 보이는 게 아닌가! 프레첼의 원조는 독일의 라우겐브레첼. 라우겐(소다수)에 담근 후 굽기 때문에 겉은 딱딱하고 바삭하지만 속은 하얗고 쫄깃한 매듭 모양의 빵이다.
독일에 왔으면 당연히 브레첼은 먹어봐야지. 빵순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강했고 브레첼에 쪽파크림치즈를 넣어 먹는 것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도 쪽파를 이렇게 먹는구나! 매듭 모양뿐만 아니라 여러 모양의 라우겐 빵들이 있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독일식 케이크인 구겔호프(Gufelhupf). 주로 크리스마스나 새해 등 중요한 날에 먹는다고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꽤 커서 놀랐다. 홀 케이크로만 팔아 가격도 4-5만 원 대로 비쌌고 사더라도 다 못 먹을 것 같아 마트에서 미니 구겔호프를 샀다.
먹어봤을 땐 딱 파운드케이크 맛이었는데 아마 베이커리에서 직접 구운 구겔호프를 먹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독일 제과제빵들의 특색을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느낌이다. 빵에도 그 나라의 특성이 반영되는 건가. 데코레이션이 과하지도 색채감이 강하지도 않고 원물과 재료에 중점을 둔 독일 스타일.
‘이 나라 빵은 모든 다 먹어볼 거야!’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웃긴 건 그래도 꽤 많이 먹었다는 거. 아직도 여행할 나라와 경험해 볼 빵들이 많이 남았기에 독일에서 좀 쉬어갔던 것은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장기 여행도 체력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