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두 달을 아빠와 함께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안부 전화를 걸어 아빠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나갈 채비를 해서 친정에 들러 함께 산에 갔다. 내 인생에 이렇게나 아빠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자나 깨나 아빠 생각으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두 달을 흘려보냈다. 아빠는 지독한 암 투병 중이었지만, 내 마음 속엔 기적이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모든 고통은 잠시 지나가는 것일 뿐 이대로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차츰 좋아지고 건강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항암 주사가 너무나 독했던 탓일까. 응급실에 찾아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기력이 쇠하여진 아빠는 끝내 거실에 늘 지키던 자리를 떠나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만 앉았다 누웠다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아빠는 이 세상을 떠나가고야 말았다. 잠시 괴로운 기간이 지나가면 다시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생각으로 아빠를 안일하게 살피던 때, 마침 아빠의 숨이 끊어졌다.
아빠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져서 누워있는 모습을 다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고, 조문객들이 오가는 장례식장에서 3일을 보냈는데도 생각할 수록 와닿지 않는 아빠의 죽음. 어떻게 생각하면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되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쉴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내 마음도 더 편하기도 하다. 또 한 편으로는 이제 아빠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물어볼 수 없고 기쁜 일이 있어도 나눌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프기도 하다. 어느 누가 생각해도 '죽음'이란 슬픈 것이지만, 그 가운데 감사하고 다행인 점을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야하는게 맞는거겠지. 나는 아빠가 떠나간 후에야 아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아빠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내가 알고 있는 아빠에 대해 돌아보고 아빠의 입장이 되어 아빠가 겪었던 상황에 처해 보기도 했다. 결국 아빠는 하나 뿐인 딸, 나의 태어날때부터 나를 사랑했겠지만 나는 이제서야 아빠를 사랑한다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의 죽음이란 나에게 마냥 슬프기만 하고, 마냥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떠나가시기 일주일 전 쯤, '장기기증', '죽기 전 증상'을 검색해 본 것은 아빠는 이미 그때부터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느꼈던 것일까. 죽음을 앞두고 하루 하루 죽음에 가까워져가는 아빠의 삶은 어떠했을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나가야만 했던 아빠의 마음 속에 감히 내가 들어가 내 멋대로 헤아려본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것은 모두 이 땅에 내려놓고 아빠만 훨훨 날아 올라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