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는 배식판을 들고는 테이블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곳에서의 식사도 이제는 완전히 적응된 듯했다. 게다가 이렇게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삶을 얼마 만에 사는 것인지…….
하지만 몸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 살아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얼마 전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뇌압이 점점 상승하고 있습니다. 혈압도 높아지고 있고요. 두통이 심해진다거나, 의식을 잃는 일이 더 자주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자포자기한 지 이미 오래다.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가슴팍에 죄수번호가 새겨진 채 함께 밥을 먹는 수감자들, 그리고 한 손에 삼단봉을 든 채 매서운 눈매로 그들을 감시하는 교도관들. 갑자기 2448이라는 그의 새로운 정체성이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청년이 말한 심판이라는 건가?
두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오늘따라 국이 더욱 싱겁게 느껴졌다. 그 싱거운 국을 먹으며 그는 오래전 자신을 떠난 아내를 떠올렸다. 아내를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에조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아내를.
그는 단 한 번도 반찬 투정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남편이었다. 국이 싱거울 때도, 짤 때도 그는 단 한 번도 투정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 같은 남자를 사랑해 준 아내가 고맙기만 했다. 아내와의 결혼은 그에게 허락된 최고의 축복이었다. 비록 아내와의 결혼으로 인해 동생은 예전에 살던 집에서 혼자 살게 되었지만……. 이것이 내심 걱정이 되었던 두오는 신혼집을 두정의 집과 가까운 곳에 마련했다. 그의 아내는 못마땅해했지만 확고한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동생을 향한 그의 마음은 그만큼 각별했다.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땐 딸까지 생겼다. 어느덧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모두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이름을 ‘다정’으로 지었다. 아이가 생겨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기에 두정의 집에서 먼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이제 동생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면회객이 왔다는 말을 들은 것은 오후 4시가 지나서였다. 두오는 축 처진 몸을 일으킨 채 교도관을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아빠.”
아크릴판 너머로 보이는 사람은 다정이었다.
“혼자 온 거니? 다윤이는?”
“저 혼자 왔어요.”
두오가 자리에 앉자 다정 역시 아크릴판 반대편에 앉았다.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요. 아빠는요?”
어떻게 지낸다고 말해야 할까. 몇 초 동안 고민하던 두오는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잘 지내지.”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다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 말하렴.”
“약속해 주세요, 사실을 말해주겠다고.”
자신을 보는 다정의 단호한 눈빛에 두오는 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약속하마.”
두오의 대답에 다정이 주먹을 불끈 쥔 채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 사람…… 왜 죽이신 거예요?”
순간 두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더니 “말했잖니.”라고 대답했다.
“진술서에 쓴 것처럼, 그리고 지난번에 너에게 얘기한 것처럼…….”
“약속하셨잖아요, 사실대로 말해주겠다고.”
다정이 두오의 말을 끊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오에게는 매우 낯선 목소리였다.
내 딸이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적이 있던가.
순간 두오는 직감했다. 다정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시 모른 척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맞아.”
“거짓말!”
이성을 잃고 소리치는 딸의 모습을 두오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진실을 얘기하세요.”
다정이 매서운 눈빛으로 두오를 바라봤다.
“진술서에도, 저에게도 거짓말하셨다는 것 다 알아요. 그 사람을 죽인 이유, 돈 때문이 아니잖아요.”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아뇨, 전 제가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얘기 다 들었어요. 몇 달 전 다윤이랑 보육원에 가셨을 때, 그때 그 사람을 만났죠?”
그 순간 두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아이가 그걸 어떻게……?
어떤 말도,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다정의 쓴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공원에서 그 사람과 대화하셨잖아요. 그것도 돈 때문인가요? 그런가요?”
처음 보는 다정의 서슬 퍼런 외침에 두오는 넋을 잃었다.
이 아이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또…… 그리고…….”
다정이 울분을 삼키며 고모의 이야기를 하려는 그 순간, 두오의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순식간에 바닥에 엎어진 그의 모습을 보며 다정이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동시에 교도관도 그를 향해 냅다 뛰어왔다.
교도관이 그의 뺨을 두들기며 의식이 있는지를 확인했지만 두오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저 힘없이 입을 벌린 채 바닥에 누워있을 뿐이었다.
교도관이 그를 업더니 면회실 밖으로 냅다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정은 그 모습을 입을 벌린 채 지켜볼 뿐이었다. 어느새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