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버스 기사가 친절한 인사를 건넸지만 진우는 아무 대답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교통카드를 찍은 후 맨 뒷자리에 앉은 그는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있는 사진을 집어 들었다.
분명 아버지였다.
훨씬 젊었을 때의 모습이지만 분명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 다정은 그 여자가 자신의 고모라고 했다. 그리고 사진 속의 분위기로 보아 평범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분 나쁜 생각이 들자 진우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후 진우는 버스에서 내려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저 어머니를 빨리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만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야 한다.
하지만 만약 어머니도 모르는 일이라면?
“엄마, 계세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머니를 불렀다. 거실의 불이 꺼져 있었기에 아무도 없는 건가 싶었지만, 잠시 후 방문을 열고 미애가 나타났다.
“진우야.”
숨을 헐떡이는 진우를 보며 미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니?”
“잠시, 이것 좀 보세요.”
진우는 지갑 속 사진을 꺼내 미애에게 보여줬다.
“이 사람, 아빠 맞죠?”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던 미애는 사진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이 여자는 또 누군가요? 아는 사람이세요?”
하지만 미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왜 다른 여자랑 이런 사진을 찍은 거예요?”
어머니는 뭔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미애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엄마!”
참지 못한 진우가 고함을 지르자 미애가 눈을 찔끔 감았다. 그녀는 “일단 앉거라.”라고 말한 후, 부들거리는 다리로 거실에 있는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진우가 옆에 앉자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주 오래전에…… 네 아버지가 외도를 한 적이 있어.”
“외도요?”
“그래.”
미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네 아버지 대학 후배의 직장 동료였어. 그 사람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안 나는…… 한때는 이혼까지 생각했단다.”
“그래서 그 후엔 어떻게 됐어요?”
진우의 물음에 미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얼마 후에 관계를 정리하셨어.”
“그 여자는요? 그 여자는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하지만 진우의 물음에 미애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어두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가 오래전 외도를 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바로 다정의 고모이자, 아버지를 죽인 그 사람의 동생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걸까?
“엄마, 잘 들으세요.”
어머니를 바라보는 진우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졌다.
“이 여자는…… 아빠를 죽인 그 사람의 동생이에요.”
그의 눈에 조금씩 창백해지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