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아줌마의 독후감 공모전 도전기
오십 중반의 나이에 번듯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내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해. 이제부터 나를 돌보며 살기로 하자.’ 호기롭게 선언하고 폼나게 명퇴를 했다. 되도록 느릿느릿 아주 아주 게으르게 살았다. 마음 가는 대로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보냈다. 딱 반년쯤 지나자 마음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내 삶에서 중요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 공허함의 마음 구멍 하나가 자꾸만 커져만 갔다.
‘이렇게 마냥 쭈욱 살아도 되나? 그러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긴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잡초처럼 자꾸만 돋아났다.
그 물음에 해답을 얻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고전과 인문학, 철학책과 시집들을 읽고 또 읽었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수험생처럼 열심히 필사도 했다. 슬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돌이켜보니 학창 시절 내 꿈은 글 쓰는 사람이 이었다. 자칭 문학소녀였고 일기 쓰기와 독서를 좋아했다. 국문학도가 꿈이었던 나는 생계형으로 교육대학에 진학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 맏딸, 교사, 공무원의 아내, 두 아들의 엄마, 맏며느리, 시어머니. 그 많은 호칭을 달고 앞만 보고 살아내느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오십을 훌쩍 넘겨 버렸다. 지금에 와서야 글쓰기에 대한 미련이 손톱 자라듯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나이에도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 본격적으로 공부 한 번 해볼까? 남들의 평가가 부끄럽고 두려워서…’ 이런저런 이유로 글쓰기가 무척 망설여졌다. 그저 일기같은 글만 긁적이고 있었다.
어느날 도서관에서 「나는 그림 그리는 화가 김두엽입니다 」 책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며 할머니께 ‘저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이 늙은이도 여든이 훌쩍 넘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단지 그리는 게 좋아서 한 십년 꾸준하게 그렸더니 개인 전시회도 가지게 되었지요. 이젠 남들이 화가라고도 불러 주네요. 호호호. 인생에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어요. 재미있으면 꼭 시작해요.”
할머니가 내 움츠린 어깨를 토닥이시며 자꾸만 용기 내라고 등 떠미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의 공허함이 깊은 웅덩이가 되기 전에 도전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을 조금씩이라도 성장시키고 변화시켜 보자. 인생 절반을 살아온 나. 지금의 나이야 말로 글을 쓸 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다 좋은 글감들이잖아. 자꾸만 두려움으로 뒷걸음질 치는 나를 찬찬히 다독거린다.
‘부산시민 독후감 공모전 ’ 포스터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나도 한 번 해볼까? 그래 ! 아무튼 도전해 보자!’
전에 없던 용기가 불쑥 발동한다. 할머니의 책과 소통하고 공감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내 글쓰기의 성장을 위해 부끄럽지만, 세상 밖으로 내 글을 보내어 보자.
몇 달 후 입상 소식을 듣고 내 꿈에 1미리 다가선 느낌. 마음에 몽실몽실 뿌듯함이 차오르는 듯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상승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유년 시절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하여 재해석하며 노스텔지어에 젖고, 이제 함께 늙어가는 친정엄마 이야기를 쓰며 눈씨울을 붉히고 공허한 마음을 온기로 채운다. 관찰자가 되어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자세하게 오래 바라보며 의미를 발견해 나간다. 더 좋은 삶을 위해 글을 쓰는 순정한 기쁨에 취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