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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추어탕 맛을 찾아서

by 루미상지

추어탕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어린 시절, 외갓집 산속 마을에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미꾸라지를 잡으러 다녔다.


동네 총각들이 모두 모여 양동이와 삽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나도 이모와 삼촌들을 따라갔다.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내가 귀찮았던 용구 삼촌은 나를 못 따라오게 달랬다.

“루미야, 거기 가면 큰 뱀이 있어. 아이들은 위험해서 안 돼. 할아버지한테 홍시 따달라고 해라.”

하지만 호기심 많은 나에게는 그깟 홍시보다 미꾸라지 잡는 일이 훨씬 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다.


논두렁에 도착하자 삼촌들은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며 하나, 둘, 질퍽질퍽한 논고랑 속으로 들어갔다.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들 사이로 삼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엎드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만 논고랑 속을 손으로 더듬었다. 삼촌들이 일어설 때마다 누렇게 기름지고, 통통하게 살 오른 미꾸라지들이 커다란 손아귀를 빠져나가려 꾸물거리며 올라왔다.

논고랑 흙을 한 삽 떠서 뒤집어 놓으면 그 속에서도 미꾸라지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왔다.


나와 이모는 얼른 양동이를 삼촌에게 건넸다. 사로잡힌 미꾸라지들이 몸부림을 쳤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호기심 많은 나도 해보고 싶었다.

“삼촌 나도 한번 해볼래.”


삼촌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바지를 걷어 올리며 논고랑 속으로 들어갔다. 삼촌은 말리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논고랑 위쪽 언덕의 조그만 구멍을 가리키며 그 속에 미꾸라지가 숨어 있으니 손을 넣어보라 했다.

“에이, 삼촌. 내가 바보야? 미꾸라지가 물속에 살지 언덕에 살아?”

믿기진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넣었다.

그 순간 맙소사 물컹물컹 미끄덩한 뭔가가 손끝에 잡혔다.

“아악”

나는 들판이 떠나가라 악을 쓰며 공중에 손을 털었고 비틀거리다 시꺼먼 논고랑 속에 자빠지고 말았다, 미끄럽고 차가운 뱀이 내 손을 무는 줄 알았다. 엎드려 미꾸라지를 잡던 삼촌들은 모두 일어서 나를 바라보며 한바탕 웃었다.

“루미야, 논에는 미꾸라지도 살지만 드네기 (논에 사는 누룩뱀의 한 종류로 전라도 사투리. 독이 없다) 도 살아.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

온몸이 흙탕물로 젖은 나는 논두렁으로 다시 올라와야 했다. 젖은 몸이나 옷보다 엄마한테 혼날 일이 더 걱정이었다.


점심 먹고 논으로 가서 저녁 해 질 무렵이면 양동이 한가득 미꾸라지를 잡아 올 수 있었다. 우리는 미꾸라지로 가득 찬 무거운 양동이를 들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는 미꾸라지를 반기며 커다란 고무 대야에 미꾸라지를 넣고 굵은소금을 뿌렸다. 미꾸라지들은 최후의 몸부림을 치며 거품을 물었다. 지푸라기나 호박잎으로 몇 번 씻어낸 미꾸라지를 까만 무쇠솥에 넣고 장작불로 삶는다. 삶아진 미꾸라지를 꺼내 이모는 학독에 넣고 갈았다.

으깨진 미꾸라지를 꺼낸 뒤, 그 학독에 마늘과 생강, 들깨, 빨간 고추도 함께 갈았다. 갈린 미꾸라지 속에 된장과 무청 시래기, 호박잎을 듬뿍 넣고 끓였다.


커다란 무쇠솥에 하얀 김이 올라오고 한두 방울 물방울이 맺히면 끓기 시작한 것이다. 곧 구수한 추어탕 냄새가 콧구멍을 자극한다,

바로 그때 나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맡겨진다. 온 동네 어른들 집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깨딸 할매 집으로 추어탕 드시러 오세요.”


외갓집 마을은 전주 이 씨 집성촌이라 모든 마을 분 들이 가깝고 먼 친척들이었다. 잠시 후면 할머니, 할아버지, 어른들이 코흘리개 아이들 손을 잡고 집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둑어둑한 남폿불 밑의 부엌에서는 외할머니와 작은할머니, 엄마, 이모 등 여자들이 분주했다. 거무스름한 꽁보리밥을 밥그릇 가득 고봉으로 담았다. 구수한 추어탕을 한 대접 철철 넘치게 떴다.

또랑 건너 밭에서 뽑아온 얼갈이배추와 열무로 버무린 겉절이 김치도 한 대접 꾹꾹 눌러 담았다. 마지막으로 껍질을 벗기고 데쳐서 된장과 풋고추로 무친 고구마 순 나물이 척척 상 위에 오르며 근사한 한 상이 차려졌다.

조그만 부엌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면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발을 벗어던지며 방으로 뛰어들었다. 방안에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모여 한솥 끓인 추어탕을 먹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다란 무쇠솥은 빈 솥이 되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모두 돌아가셨다.

용구 삼촌과 이모도 결혼해 외갓집 동네를 떠났다.


그 후로도 우리 집은 전통처럼 가을이면 추어탕을 끓여 먹었다.

엄마는 여름 내내 흘린 땀과 다가올 추운 겨울을 대비해 추어탕으로 몸보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었다. 점심시간이면 직원들끼리 미리 메뉴를 정하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끼리끼리 무리 지어 식당을 찾아갔다.

금남로 3가에는 “뽐뿌집” 이라는 추어탕 전문 식당이 있었다. 어느 팀에서든지 뽐뿌집을 갈 때면 꼭 따라다니며 추어탕을 먹었다. 외갓집에서 먹던 맛과는 비교가 안 되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결혼을 하고 전주로 이사를 왔다. 추어탕은 추억의 음식이 되었다. 전주에서는 ‘남원 추어탕’이 유명하다고 해 남편과 같이 다녀왔다. 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광주 사는 친구가 두암동 자기 집 앞에 맛있는 추어탕 집이 새로 오픈했다고 연락이 왔다. 조그만 식당인데 점심때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란다.

당장 예약하고 찾아갔다.

우리는 추어탕 두 그릇을 주문해 맛있게 먹고 엄마 것도 한 그릇 포장해 왔다.

엄마도 맛있게 드셨다. 하지만 그때 그 맛은 아니라고 했다.


그 식당 이름도 ‘남원 추어탕’이었다. 왜 추어탕 집 이름은 전국 어디서나 모두 ‘남원 추어탕’일까?

‘깨딸할매 추어탕’이 얼마나 맛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나 보다.


지난주 엄마 집으로 김장하러 갔다. 엄마는 네 명의 딸들이 모두 모여 김장한다는 소식에 추어탕을 끓여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도 오래전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먹던 엄마의 엄마 추어탕 맛이 그리웠나 보다.

엄마는 그 추어탕 맛을 생각하며 외갓집 동네에 미리 말해 놓았다고 했다.

“자연산 미꾸라지 잡으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꼭 좀 연락해 주소.”


드디어 얼마 전 시골에 사는 엄마 친구에게서 자연산 미꾸라지를 잡았다는 소식이 왔단다. 엄마는 바로 달려가 사 왔다. 정성스럽게 삶아서 절반은 냉동실에 넣어두고 절반은 온갖 솜씨를 다해 추어탕을 끓였단다. 그런데 옛날 그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루미야, 아무리 생각해도 된장이 문제인 것 같어야. 너 다음에 올 때 느그 사돈어른 맛있는 된장 좀 갖고 와 봐라.”

“엄마, 그때는 못 먹었던 때이고 지금은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 많은데 그 맛이 나겠어요? 우리 입맛이 달라진 거예요.”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죽기 전에 그 맛을 꼭 한 번 더 찾아보겠다고 우기신다.


김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혹시 김장 때문에 몸살이 나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말한다.

“아이 루미야, ‘뽐뿌집’이 상무지구로 이사 왔단다. 뽐뿌집에 가면 그 맛이 날까? 우리 한 번 가보자.”


그래, 그럽시다. 우리 추어탕 집 순례를 다니며 기어이 옛날 그 맛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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