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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 Apr 25. 2024

도망친 곳에 낙원도 있다

관용에 대한 찬사

도망친 곳에 낙원이 정말 없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에도 낙원이 있다.


이건 내가 도망자여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인생은 한번쯤은 도망치는 경험이 있지않는가?


그런 도망자에게 "도망치는 곳은 낙원이 없어!"보다는 관용의 시각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도망치는 곳에 낙원도 있다!"


사실 내가 요즘 꽂혀있는 단어는 "관용"이다.


힘들어서 도망치든 비겁해서 도망치든 이 상황이 괴롭지 않은데 도망치는 사람이 있을까?


재미삼아 즐거워서 도망치는 사람은 어린 시절 술래잡기할 때 밖에 없었던거 같은데


그런 도망자에게 관용은 새로운 기회이다.


요즘 들어 관용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24k 보다 요즘 보기 힘들다.


염세주의자들이 가득한 현대사회에서는 관용을 뭐랄까?


애매한 위치가 되었다.


부부나 연인사이에 관용은 호구라 부르고 심지어 서로 관용을 베푼 것에 대해 


남이 알기라도 하는 날에 놀림감이 되곤 한다.


왜 남들은 관용을 놀리고 심지어 비난할까?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원래 귀한 건 남들이 탐하고 욕심내고 시샘한다.


가지기 힘든 것일수록 더 그렇다.


그렇다고 귀해서 관용을 숨기는 것도 안된다.


남이 탐하고 욕심내고 시샘한다고 관용을 숨기는 순간


관용의 힘은 순식간에 줄어든다.


원래 관용의 성질이 그러하다.


들어낼수록 보여줄수록 가치는 것


그게 관용이다.


나는 그래서 세상이 관용으로 가득 찾으면 좋겠다.


뭐, 도망자한테 비난이 아닌 기회도 주고 말이다.


여럿이서 동시에 관용도 가지게 되면 관용도 흔해지니까 


더 이상 탐하고 욕심내고 시샘하지 않지 않을까?


자기도 가지고 있는 관용은 더 이상 탐하기 힘들수도? 


내가 아까는 '염세주의자들로 가득한 현대'라고 했는데


나도 어느 정도 염세주의자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그러한 거 같다.


모두가 염세주의자와 낙천주의자 성향을 6:4 혹은 4:6 정도 비율로 모두 품고 있으니까?


그렇다는건 나도 이해가 안되고 비난하고 싶은 관용도 있다.


그럼에도 귀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싶다.


아무튼 도망간 곳에 낙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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