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축복이의 미술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권용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여행준비를 위한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지만, 계획하고 있던 나트랑 여행이 너무 기대되어서였는지, “여권만들기”에 조금 서두르고 싶었다.
“사진관 어디 없나? 주변에 검색해 봐도 죄다 무슨 스튜디오랍시고 예약하고 오라는데, 그마저도 예약이 꽉 찼네.”
“오늘 찍을 수 있겠어? 그냥 다음 주에 미리 예약하고 가서 찍자.”
그냥 여권사진만 대충 찍으면 될 것 같은데. 문제는 큰아이였다. 셀프로 찍자니, 한 곳을 응시하는 게 어렵고 산만하기 그지없는 아이를 붙들고 찍을자신도 없었다. 그럴싸한 스튜디오에 예약해서 찍자니, 그것대로 번거로운 일이었다. 큰아이의 어려움을 이해해 줄 만한 곳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신랑은 지레 겁먹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저런 안 좋은 경험들이 있던 터라 걱정부터 앞섰다.
낙담 아닌 낙담을 하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한 사진관이 내 눈에 들어왔다.
<OO사진관>
사진관 이름은 아마도, 사장님의 아들 이름을 따온 듯했다. 창문에 붙어 있던 사진관 이름 시트지는 다 벗겨져가는, 허름한 상가건물 2층에 있었다. 늘 다니던 길인데 이런 사진관이 왜 이제야 눈에 띄었는지. 허름한 건 둘째 치고, 뭔가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보! 저기에 사진관이 있네? 한번 가볼까? 안 되면 말지 뭐.”
“와. 완전 우리 어릴 적 사진관 같다. 그래 한번 가보자.”
그렇게 들어간 OO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30년 전에 찍은 듯한 가족사진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지만, 오히려 거부감보다는 괜히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딸랑거리는 문 소리를 듣고 사진관 안쪽에서 7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님 한 분이 나오셨다.
“여권 사진 좀 찍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여권사진이요? 일단 이리 오세요. 누구부터 찍으려고?”
“아, 저희 큰아이부터 찍을 건데요. 조금 산만한 아이라 잘 찍을지 걱정이 되네요.”
“엄마부터 찍어요. 그래야 애들이 보고 따라 해요.”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사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찍었다. 야무진 둘째 딸내미는 바로 나를 따라 사진을 찍었다. 이제 큰아이만 남은 상태. 심호흡을 크게 하고 축복이를 불렀다. 일단 자리에 앉히고 카메라를 응시하라고 알려주었다. 역시나, 카메라 렌즈는커녕 눈알을 이리 떼굴 저리 떼굴.
“축복아! 여기 봐 여기! 절대 다른 곳 보면 안 돼! 움직이지 말고, 그리고 좀 웃어!.”
사진 찍는 내내 가만히 있질 못하는 큰아이. 눈동자는 도대체 어디를 향하는 거며, 웃으라고 했더니 눈만 웃고 있다. 입도 좀 웃어보라고 했더니 이제는 눈이 부자연스러워진다. 한숨을 푹 쉬었더니 할아버지 사장님도 덩달아 한숨을 푹 내쉬는 게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사장님이 큰아이의 자세를 잡아주고 돌아서면 그새다시 헝클어지고, 자세를 다시 잡아주면 또 헝클어지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저희 아이가 좀 느린아이라 사진 찍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
사장님께 연신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동시에, 큰아이를 쏘아보았다. 움직이지 말고 잘 앉아 있으라는 눈빛이었는데, 알아차렸으려나. 우여곡절 끝에 겨우 여권 사진 기준에 맞는 사진을 찍었고, 바로 사장님은 작업에 들어가셨다. 아이들이 심심해할까 봐 신랑과 아이들은 밖으로 내보내고, 나는 혼자서 덩그러니 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얼굴을 보니 크게 될 놈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엄마가 좀 예민해요? 애 너무 잡지 마. 나도 애 키워봐서 알아. 아들이 많이 산만한가?”
“네, 좀 산만한 아이라 약도 먹고 있고 발달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얼굴을 보니깐 보통 애가 아니야. 크게 될 아이니깐 엄마가 뭘 하든 선택을 잘해야 돼.”
투박하고 거친 목소리로, 마치 관상가처럼 나에게 축복이에 관한 충고를 쏟아부으셨다. 그리고 귀에 꽂히는 희망적인 이야기들. “크게 될 놈이야”
종종 나는 희망을 잃고 싶지 않아서 희망글을 찾아보곤 했다.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다 같은 케이스가 아님을 알지만, 희망적인 글들을 읽으며 힘을 내곤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일부 사람들은 현실감이 떨어진다며 걱정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나는 그저 희망 글에 목말라 있는 엄마다.
그런데, 아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들어간허름한 사진관에서 우리 아이의 희망을 들을 줄이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희망 섞인 말들이었지만, 나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어느 희망 글보다도 나에게 더 희망적인 말들이었다.
“사진 나왔어요. 내가 한 말 잘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또 올게요~”
나도 모르게 “또 올게요.”라고 말했다. 희망 가득한 이야기들을 또 듣고 싶어 그런 말을 했던 걸까? 투박하고 거칠게 인사를 받아주신 사장님. 집으로걸어가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담아 들어야 할까? 내가 보는 내 아이는 아직도 앞이 깜깜한데. 어쩌면 지치지 말고 힘을 내라는 사장님 표 응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