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제목 잘 지었다. '다함께 차차차'라니, '차차차'에서 풍겨오는 묘한 리듬감과 앞에 붙은 '다 함께'라는 단어는 읽는 이의 마음과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후킹이 있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이 노래를 유튜브 창에 검색했다. 십몇년전의 영상들이 주르륵 딸려 나왔고 마이크를 쥐고 있는 가수 뒤로 라틴댄스 의상을 입은 댄서가 현란한 춤사위를 펼쳤다.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라는 가사에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면 박수를 치며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보인다.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모든 근심을 털어 내고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무릇 대중음악이라면 이런 맛이 있어야 하지 않나(듣는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나는 언제 그런 음악을 만들어보나). 시작부터 '차차차'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는데 원래 오늘 글쓰기의 주제는 마시는 차다(글을 쓰려고 자판을 치기 시작하니 갑자기 '차차차'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뿐 '차차차'는 이제 그만 보내주도록 하자).
올 겨울, 엄청나게 추운 날은 손에 꼽을만했다. 그 손에 꼽히는 최고로 낮은 기온과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에 집순이는 웬일인지 외출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1시간 동안 가볍게 기타를 치고 간단하게 커피를 마시자는 일정이었는데 기타를 치다 보니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다 보니 일행과 맥주와 군만두를 먹게 되고, 맥주를 먹게 되니 기분이 좋아지고 2차로 연남에 있는 LP 바에 가자, 펑키한 음악을 틀어주는 뮤직클럽에 가보자 신이 나던 차였다. 그 근방에 있는 지인도 부르자며 전화를 걸었다가 어찌어찌하여 용산 한 고깃집에서 지인의 지인들과 나와 일행이 다 같이 만나게 되었다. (나는 고깃집이라는 공간에 가본 지 십 년은 된 것 같은데) 그 추운 날 사람들은 지글지글 갈빗대를 구워 먹는 고깃집으로 모여들어 좁고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옥닥복닥 하는 모습이 펭귄무리가 허들링 하는 것 같이 보였다. 심지어 그 좁은 곳에 대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 나와 일행은 좁은 공간에서 요리조리 음식을 서빙하는 사람을 피해 가며 거의 한 시간을 서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한번 만났던 사람도 있었는데 치익 고기 굽는 소리와 와글와글 달그락거리는 소리 틈사이로 스몰토크를 밀어 넣으며 기다렸다.
드디어 착석, 빠르게 밑반찬이 깔린다. 무말랭이 무침을 냉동했다가 셔벗처럼 내놓은 반찬과 명이나물, 삭힌 고추무침등이 나왔다. 고기 말고도 물쫄면이나 볶음밥 등 내가 주워 먹을 만한 메뉴가 많았다. 누군가가 양념이 배인 갈비를 접시에 놓아주기에 한입 뜯어먹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인가 맛과 식감이 너무나 낯설게느껴졌다. 먹는 둥 마는 둥 내려놓고 쫄면조지기에 돌입 후 긴 식사시간이 끝났다(기다림 포함). 그리고 다 같이 차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주최 측 안내에 따르면 차가 메인이벤트였다고), 걸어서 몇 걸음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여니 차분한 공기가 짙게 깔린 장소에 맑은 피부와 목소리 또한 청아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에너지의 흐름에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단정하게 내려 한잔씩 따라주신 우롱차를 마시며 여기의 고요한 에너지를 들이쉬고 남은 고깃집 에너지를 날숨으로 내뱉었다.
점차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아지고 선생님은 두 번째 잔을 내려 각자의 잔에 따라주었다.
"많이 먹고 마셨을 때는 우롱차만 한 게 없어요. 우롱차는 소화를 도와주고 심혈관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나는 고개를 끄떡이며 손에 쥔 매끈하고 단단하고 따뜻한 찻잔의 촉감을 음미했다. 선생님은 마시는 족족 잔을 채워주셨고 이 호사스러움에 내 안의 어딘가 팽팽했던 부분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우롱차를 후후 불어가며 홀랑홀랑 두 잔정도 마셨다. 선생님은 다시 물을 끓이고 새로운 찻잎을 꺼내서 여러 번의 복잡해 보이는 과정을 지나(찻잎을 씻고 한번 우려서 따라내고? 솔직히 멍 때리느라 과정을 유심히 보지는 않았다) 작은 찻주전자에 물을 붓고 차를 울렸다.
"이제 보이차를 드릴 겁니다. 처음과 시간이 지날 때의 우림정도에 따라 다른 맛을 느끼실 수 있어요." 선생님은 이파리모양의 차받침에 앙증맞게 놓인 엄청나게 작은 찻잔에 보이차를 따라주셨다. 넓고 커다란 이파리에 맺힌 이슬을 자신만의 작은 찻잔에 따라먹는 엄지공주가 된 기분으로 엄지와 검지로 찻잔을 잡고 차를 마셨다. 보이차에 대해 설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혈색을 관찰하며 나도 차 마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 복잡해 보이는 차와 다기들을 구매한다면 어떨까, 잠시 상상하다 아서라 하며 훠이훠이 생각구름을 날려버렸다. 현생에서는 뜨거운 물을 끓여 티백차라도 한잔 준비하는 일상의 틈도 없을뿐더러(절대 바빠서는 아니다. 그냥 하루 1회만 차를 마실 수 있다면 커피집에 가서 오트라테를 먹어야 하는 게 하뮤국룰이라)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하여 다기를 산다고 하더라도 두 번 우려먹고 5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당근으로 다음 주인을 찾아주는 패턴일 터.
그런 한편 내가 살고 싶은 삶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해가 져서 밤이 오면 자연스럽게 이불로 기어들어가 잠을 자고(한 9시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6시쯤) 요가와 명상을 하고 다기를 달그락 거리며 차를 한잔 우려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왜인지 이런 삶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절대 외부적인 요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것과는 달리 매일 핸드폰을 손에 쥐고 새벽 2,3시에 잠을 청하고 7, 8시 정도에 일어나 버리는 생활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스트레칭을 매일 하겠다는 새해목표도 지키지 못한 지 벌써 오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앙증맞은 잔에 4번 정도 족족 받아마시다 보니 어느새 밤 12시가 되었다(차가 끊겨서 택시를 부르는데 택시가 절대로 잡히지 않아서 2시간 정도를 밖에서 얼어 죽을 뻔했던 건 생략하도록 한다. 설명하면 추워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밤 12시가 되어가도 고단한 몸뚱이를 침대에 누일 생각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책망하며 내 생애 어느 지점에는 내가 꿈꿔온 삶을 살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차가 있는 삶, 어떠할까. 왠지 좋을 것 같은데, 근심을 털어놓고 다 함께 차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