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꽃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암. 그렇고말고.
삭막한 도심 속 그것도 산업단지 쪽으로 거처를 옮긴 후 주로 지하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새로운 계절이 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요새 나는 스레드라는 sns를 주로 보는데 피드에 뜨는 꽃소식으로 봄을 대체했다. 사람들은 벚꽃뿐 아니라 제비꽃, 할미꽃, 조팝나무 꽃 또 이름 모를 들꽃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사진을 끊임없이 올려주었다. 꿀을 빨아먹으러 온 직박구리의 사진도 종종 올라왔다. 나는 지하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순간을 찍어 호주머니에 넣는 사람들을 상상하고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나 하얗고 노란 작은 꽃들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다행히 집 바로 근처에는 하천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제법 자연을 느낄 수 있다. 벚나무가 양 옆으로 심어져 원한다면 벚꽃 구경을 실컷 할 수도 있었을 거다. 아 벚꽃 봐야지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간 날은 비와 강풍이 분 다음 날로 이미 벚꽃이 상당량 지고 푸른 잎이 돋아 있었다. 겨울에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하천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일광욕을 하거나 뭔가를 캐고(?) 있었다. 유독 바람이 거세게 부는 느낌이 드는 이번 봄에 벚꽃 잎이 바람에 휘몰아치는 길을 걷다 보니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나는 검은 점퍼를 벗어 허리에 묶고 털크록스를 끌며 신나게 듬성듬성한 벚꽃사이를 거닐고 잔잔하게 핀 들꽃을 바라보고 물비린내와 흙냄새를 맡았다. 사람들은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러 이리저리 손을 뻗었다.
나는 잠시 벚꽃 잎을 잡았다가 손을 펼쳤더니 알고 보니 나방이었다든지 하는 좀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서울숲에 다녀왔는데 가벼운 나들이 옷을 입고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과 촬영회를 하러 온 친구들 무리로 가득 차있었다. 친구 몇 명이 먼저 와 돗자리를 깔아 놓은 자리 옆은 나름 유명한 포토스팟이었는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갔다. 물을 뿜어내는 분수와 물 근처에서 자라는 수풀과 나무들 사이에 서서 포즈를 잡는다. 촬영을 맡은 사람은 ’ 손을 이렇게 해봐. 아니 역광이니까 고개를 이렇게. 하체는 그대로 두고 상체만 돌려서 웃어 ‘라는 등의 구체적인 디렉션을 줬다. 그 사이 까치는 나무 둥치 오목하게 파인 곳에 고인 물을 맛있게 마셨다. 해는 밝고 따뜻하고 철쭉과 영산화는 활짝 피어있고 봄은 가깝다. 우리는 과자를 먹으며 빛을 듬뿍 쐬다가 즉석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