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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하뮤

두부 허튼소리와 하루의 끝은 두부요리

by 하뮤하뮤

나는 엄청나게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잠깐 딴생각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땅이 나를 엎어치기 기술로 공격한다. 억울하다. 나는 균형을 잃고 세게 무르팍을 부딪힌다. 자동적으로 손이 앞으로 나가 거슬거리는 바닥에 손이 까진다. 쑴뻑쑴뻑 쓰려오는 손바닥에 맺힌 아주 약간의 피와 쓸린 자국. 조그만 내 손과 무릎은 10일 된 딱지와 5일 된 딱지, 어제 생긴 상처들로 성할 날이 없었다. 넘어진 후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새침하게 입을 앙다물고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일어선다. 혹시나 아이고 괜찮니 얘야라고 묻는 다정한 어른이라도 있으면 눈이 마주칠세라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던 기억이 난다. 피부가 벗겨지고 멍이 드는 것도 아프지만 마음속에 피어나는 서러움과 창피함.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고 우리 하뮤하뮤가 또 넘어졌구나 하는 부모님의 반응에 한번 더 서러워졌다.


그렇게 잘 넘어지는 아이에게 엄마는 왜 그리도 두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는지. 두부란 너무도 쉽게 망가지기 쉬운 연약하디 연약한 식재료가 아니던가. 또 나는 엄마의 지령을 받고 동네 슈퍼에 가서 두부 한모를 손으로 가리킨다. 슈퍼마켓 주인은 흰 비닐봉지에 새하얗고 네모지고 두툼하고 투박하게 여리여리한 두부를 한 모 담아준다. 기필코 오늘만은 두부를 깨 먹지 않고 집까지 안전하게 배달해야 한다는 커다란 의무감과 불안함을 하얀 비닐봉지에 눌러 담고 최대한 조심조심 발걸음에 주의하면서 돌아온다. 거의 성공이다. 저 계단만 올라가면 집이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하고 식은땀이 난다. 어김없이 잠깐 딴생각을 하고 어어? 하는 사이에 무릎으로 휙 다가오는 계단과 비닐봉지 안에서 제멋대로 으깨진 두부.


아, 오늘도 실패로군. 도대체 엄마는 왜 자꾸 두부요리를 해서 나를 이렇게 시험에 들게 할까?라는 책망도 잠깐. 생각해 보면 두부요리를 좋아하는 건 나였다. 된장찌개에 두부, 김치찌개에 두부, 동태찌개의 두부, 두부 구이, 두부조림은 다 내 거. 두부요리를 욤뇸뇸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어른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얼굴도 허옇고 말랑말랑한 것이 두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주의력이 상당히 부족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하루에 한두 번쯤은 어딘가의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찧거나 갑자기 팔꿈치를 벽에 부딪혀서 주저앉아 고통을 참기도 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놀라 걱정하며 재빨리 다가와서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라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나를 본 지 좀 된 사람이라면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한 템포 쉬고) 멀리에서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래도 이런 내가 어린 시절만큼 넘어지지 않는 건 두부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요리를 잘해 먹지 않으며 식재료는 배달을 시키고 또 지금의 웬만한 두부는 팩에 안전하게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매우 관대한 인간으로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 두부 심부름을 시키고 두부를 사 오다 백번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으깨진 모양에 따라 새로운 요리를 해 먹을 가능성이 백퍼센트라는 것.


그래서 나는 상상 속에서 어떤 두부요리를 해 먹을 거냐면(이 두부는 으깨져도 되고 안 으깨져도 괜찮다.)(어쩌면 두부가 든 비닐을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돌리면서 집에 돌아와도 괜찮다.)

1) 두부짜글이: 두부를 들기름에 구워 빨간 양념으로 자글자글 졸여낸 두부 조림. 파를 어슷 썰어 구운 두부 위에 얹고 참깨가루를 위에 뿌린다. 갓 지은 하얀 밥에 간이 밴 두부와 빨간 양념을 슥슥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극락.

2) 튀긴 두부(아게다시도후): 튀긴 두부에 갈아낸 무와 가쓰오부시를 올린 일본식 두부요리다. 맛간장을 뿌려서 뜨거운 튀긴 두부를 개인접시에 덜어 후후 불어가며 무즙을 곁들여 먹으면서 차가운 생맥주로 입가심을 하면 크으 이맛이지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되는데, 아쉽게도 나는 술찌라서 한잔정도까지만 가능하다.


이상 두부에 대한 허튼소리를 마친다. 여러분도 오늘 밤 야식으로 두부요리 하나쯤 먹을 수 있잖아요.


한 줄 요약: 실패와 성공은 없다. 하루에 끝에 다만 맛있는 두부요리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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