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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n 30. 2024

청춘드라마-불꽃놀이 '노(no)'를 갖추시오.

예(yeah)를 갖추지 말고

  아랫배가 하루 종일 뭉툭한 꼬챙이로 찌르는 것 같다. 어깨와 팔 같은 곳이 쑤셔오고 머리가 무거운 것이 기분이 좋지 않다. 밖으로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 무거운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한강으로 나갔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은 분홍색에서 남색이 더해지며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간다. 한강에 도착하니 이상하게 사람이 많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무슨 한강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돗자리와 간식 등으로 채비를 단단히 하고 한강으로 모였다. 일렬로 도로에 서있는 푸드트럭에서 나온 굽고 볶는 연기와 냄새가 가득 찼다. 음식을 사 먹고자 하는 사람들의 줄도 어마어마하게 길다. 나는 성대한 마을 잔치의 주최 측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펑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저쪽 하늘에 무늬를 가진 빛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곧이어 이어지는 사람들의 환호성.

커다란 건축물에 가려 삼분의 이 정도의 하늘 조각만 볼 수 있는데도 닭꼬치, 핫도그, 회오리 감자를 손에 쥔 사람들은 까치발을 들며 불꽃놀이를 관람한다.


  차량을 통제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편 무슨 대교 아래에서는 조명으로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신나는 케이팝도 스피커를 찢을 기세로 울려 퍼진다. 불꽃놀이 못지않게 이쪽도 제법 인기가 많다. 돗자리와 캠핑의자를 가져다 놓고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를 가까이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서서 왼쪽하늘의 불꽃놀이와 오른쪽 다리의 분수쇼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불과 물의 싸움. jpg>라는 제목으로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친구에게 답장이 왔다. '어느 편이든 빨리 이겨라'


  한강에서 물과 불의 싸움을 공짜로 보여주는 건 제법 좋은 기획이다. 화려한 불꽃놀이는 축제에 멋을 더하고 가족, 친구, 연인과 좋은 추억을 남길 기회를 준다. 하지만 나는 폭죽 소리와 빛이 폭력처럼 느껴진다. 일단 커다란 소리가 싫고, 화약 냄새가 싫다. 나도 불꽃놀이가 내는 소음과 화약 냄새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영문을 모르는 작은 생명들은 어떨까, 새들이 날다가 놀라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지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면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며 핀잔한다. 거기에 나에겐 불꽃놀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청춘드라마 같은 장면이 있다. 하나같이 에너지 낭비처럼 느껴지는 그림이다.


   20대, 풋콩처럼 엉성하고 비린 맛이 나는 연애할 때다. 그는 다 쓰러져가는 슈퍼에서 불꽃놀이 폭죽을 사서 왔다. 그것도 6개 정도.

"원래 강이나 바다에서는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야. 영화에서도 그렇잖아." 그가 말했다.

(맞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썸이 시작될 때의 설렘, 가족 간의 갈등 해결 장치로 물가에서 그렇게 불꽃놀이를 해댄다.) 막대기형 2개와 발사되는 형 폭죽 4개. 나는 폭죽을 흘끗 보며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왜 저렇게 많이 사지라고, 생각한다. 황량한 바람이 불어대는 강촌에서 나는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화약이 앙상하게 발라져 있는 꼬챙이를 손에 들고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작은 불꽃을 바라봤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자마자 소리만 요란하고 금세 꺼지던 불꽃들, 그는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면서 다시 슈퍼로 뛰어갔다. 가슴에 길쭉한 불꽃놀이 폭죽을 두 개 더 안고 오면서 이번에는 화려한 불꽃을 보여주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탁! 피융- 피시시 시식-'

귀에 거슬리는 파열음과 함께 땅 위로 조금 솟던 불꽃은 멀지 않은 지점에서 시무룩하게 하강했다.

"뭐야 이거 불량 아니야? 중국제인가?" 그가 말했다.

나는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대손손 불꽃놀이 잘하는 국가로 유명한데 이 제품들은 왜 이렇게 부실하지, 생각한다. 그보다 위험하지 않나, 그리고 그저 바다 근처로 떨어지는 쓰레기가 못마땅하다.

나는 말했다. “글쎄….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사회초년생시절,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 이들과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 충동적인 성향에 충동질을 잘하는 이가 만나면 평소 안 하던 이상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을 먹으면서 낄낄댄다.

 누군가가 말했다. "야, 바다보고 싶지 않냐?"

“그러게, 밤바다 보면서 맥주 딱 한 캔만 마시고 싶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바다로 간다!” 술을 못 마셔서 탄산음료만 홀짝이던 친구를 설득해 동해로 내달렸다. 친구의 모닝은 태어난 이래 최고 속도로 달렸다. 내일 월요일이라 출근해야 하지 않냐며 누군가 말했다(그걸 지금 안거냐……).

"아, 가서 바다에서 한두 시간 놀고 바로 출발하면 아침까지 서울올 수 있어." 술 먹으면 객기라는 게 나온다. 또 객기는 전염된다. 3시간을 달려서 동해에 도착했다. 강릉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속초였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 바다에 오면 불꽃놀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 새우깡, 볼꽃놀이(손에 드는 용, 터트리는 용)를 샀다. 나는 시큰둥하게 불꽃 꼬치를 손에 들었다가 이내 취기가 또 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청춘영화를 한편 찍었다. 불꽃을 손에 들고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댔고 모래에 불꽃을 묻은 뒤 바다를 향해 쏴댔다. 역시나 불꽃은 펑펑 터지지 않는다. 못마땅하다. 시들시들 쓰레기만 나온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기분이 언짢다. 밤바다에서 먹는 맥주랑 새우깡은 처음 두입까지만 맛있다. 어느덧 새벽 5시, 슬슬 맨 정신이 돌아온다.

“이제 서울로 가자, 가야 또 출근하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막혔다. 그것도 엄청. 우리는 차 안에서 죽어가는 목소리로 각자의 부장에게 전화해서 오늘 반차를 쓰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서울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정도 된 것 같다. 나는 술냄새를 풍기며 출근했고 그 친구들과는 소원해졌다.


  한강에서 쏘아 올린 불꽃이 강촌에 들렀다가 동해를 거쳐 다시 한강으로 왔다. 불꽃놀이가 머릿속에 떠오른 김에 검색창을 열어서 <불꽃놀이 금지>라고 타이핑을 했다. 찾아보니 2014년 12월 '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백사장 내 폭죽놀이가 전면 금지됐단다. 오호라. 백번 잘했군. 엥, 근데 2014년부터? 왜 나는 몰랐지? 스크롤을 죽죽 내려본다. 백사장에서 장난감용 꽃불로 놀이하는 행위는 위반할 때마다 과태료 5만 원이란다. 폭죽을 판매하는 것도 위반 시 과태료 10만 원이란다. 하지만 해변 상점에서 불꽃을 판매하는 것은 규제할 근거가 없으며 해수욕장 내의 백사장 이외 구역에서의 불꽃놀이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검색해 본다. 화약, 폭죽으로 인한 안전사고는 물론 금속성 물질이 만들어내는 미세먼지가 문제다. 폭죽 안에는 다양한 금속성 물질 예를 들면 점화기로 사용되는 납, 추진체에 들어있는 납, 크롬 등이 들어간다고 한다. 폭죽의 화약이 연소하면서 이 중금속들이 미세먼지로 배출된다고 한다. 다른 기사를 클릭해 본다.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폭죽 탄피를 줍는 자원봉사가 진행됐다는 기사이다. 봉사자 2-30여 명이 2시간 동안 수거한 꽃불폭죽 탄피는 1만 몇천 개라고 한다. 폭죽 한 발당 떨어지는 탄피가 뾰족하게 부서진 형태로 모래에 파묻혀있다. 이 탄피는 조각조각 분해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이것은 바다로 흘러들어 바다 생명과 인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기사이다.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찾아봤다. 봄과 초여름은 새나 다람쥐 같은 동물이 둥지를 틀거나 새끼를 키우는 초기 단계이다. 먹이를 구하러 나간 부모 동물이 불꽃놀이에 방향감각을 잃거나 겁에 질리면 부모와 새끼동물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폭죽 소리와 빛 때문에 공포에 질려 건물, 자동차, 심지어 서로에게 부딪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2018년부터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는 불꽃놀이 물품 판매를 금지했다고 한다.


  이참에 불불모(불꽃놀이가 불편한 사람들의 모임)라도 만들어야 하나 생각한다. 분명 미세먼지와 폭죽 소리가 불편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 새들이나 야생동물의 목숨이 위협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1년에 몇 번 없는 일회성 이벤트인데 뭘 그러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물과 불의 싸움을 보며 아픈 아랫배가 더 불편해졌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 그러면 축제의 멋은 어떻게 더하면 좋을까? 찾아보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3D 영상과 증강현실을 이용한 디지털 불꽃놀이를 했단다. 같은 이유로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새해에 폭죽을 터뜨리는 대신 드론을 활용한 불꽃놀이를 했다고 한다. 물론 빛 공해도 심각한 문제지만 화약과 소음 문제는 일단 줄어든다. 뭐라도 하나씩 줄여가다 보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아까 점심 먹으면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에서도 아니나 다를까 바다에서 불꽃놀이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펑펑 현란한 불꽃놀이를 보는 여주를 홀린듯 바라보며 "예쁘다."라고 말하는 남주 말고 다른 장치를 넣어도 되지 않을까,  드라마작가님들,  불꽃놀이장면은 이제 yeah 말고 no를 갖춰주세요.


(그리고 나는 네 편할게, 야생동물편)


<참고문헌>

1. 신정수(2023. 08.02). 해수욕장 불꽃놀이 불법이라고? 팩트체크

2. 한지은(2023.05.27). 합법인 듯 불법인 불꽃놀이, 해수욕장은 탄피밭. 포켓이슈  

3. 김지숙. (2022.10.12.). “이러다 다 죽어!”…3년 만의 불꽃축제, 새들은 어땠을까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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