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꾸준히. 한 번에 하나씩.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국가 건강검진 대상이 되어 병원을 찾았다. 동네에 새로 생긴 깔끔한 병원이었다. 일반 검진으로 접수하려는데 오픈 이벤트로 10만 원 상당의 복부초음파를 2만 원에 해준단다. 복부 초음파 검사는 받아본 적이 없어 호기심으로 추가했다.
검사 당일, 어둑어둑하고 좁은 검사실로 들어간다. 초음파 기계와 침대를 놓을 자리만 계산해서 만든 방 같다.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자니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혹시나 안 좋은 부위가 있을까 봐 겁도 났다. 이윽고 의사가 들어오고 검사를 시작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보던 의사가 말했다.
“평소에 약주 많이 하시죠?”
“아뇨. 저는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네? 헛! 음? 아? 그런데 내장지방이 왜 이렇게…”
의사의 알 수 없는 추임새와 초음파 기계의 소음만 무심하게 방을 채웠다.
나는 평소 술, 담배, 군것질을 하지 않는다. 술은 원래 못하고 담배는 끊은 지 6년이 지났고 군것질은 어려서부터 거의 한 적이 없다. 딱 하루 두 끼가 내가 먹는 전부였다. 나중에 커서 먹게 된 유일한 간식은 커피였다. 나름 이런 식습관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내 뱃속에는 매일 술 마시는 사람 정도로 내장지방이 꽉 차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아내에게 얘기하자 그 당연한 걸 이제 알았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운동 좀 해.”
그때는 아이가 어릴 때라 일과가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규칙적인 생활과 식습관을 갖고 있는데 복부지방이 끼는 이유는 단 하나, 운동부족이었다. 사실 군 제대 후 운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음악 한다고 연습하기 바빴고 복학 후에는 그동안 말아먹은 학점 복구하느라 정신없었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생활에서 운동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심각한 상태에 충격을 받고 다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운동을 안 해서 신발이 마땅치 않았다. 검색하다 보니 양말도 스포츠 양말이 있다. 옷도 기능성 소재로 된 예쁜 옷이 많다. 모름지기 시작은 제대로 갖춰 해야 하는 법. 옷부터 양말, 신발까지 다 샀다. 이제 남은 일은 쏙 들어간 내 배를 보며 더 이상 출렁출렁 두드리는 맛을 느낄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일뿐이었다.
몇 년 만에 한 뜀박질이었지만 생각보다 할 만했다. 오랜만에 땀을 흘리니 몸이 가벼워지고 개운했다. 잠도 오랜만에 푹 잤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 생각은 다음날 눈을 뜸과 동시에 사라졌다. 달리기만 했을 뿐인데 온몸에 알이 배겼다.
달리기만으로 온몸에 알이 배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달리기는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으로 알이 배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달리기로 알 배긴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왜 달리기가 전신운동이라고 하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 몸은 달리기만으로 알이 배길 만큼 많이 약해져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시큰거리는 몸뚱이에 자존심이 상했다. 걸을 때마다 허벅지, 종아리는 물론 옆구리, 어깨도 시큰시큰했다. 그럼에도 심하게 자존심이 상한 나는 매일 나가 뛰었다. 내가 이따위에 무너질쏘냐. 다시 그때 그 체력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다짐하고 이 악물고 뛰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야심 차게 지른 운동복과 신발은 일주일 만에 집에서 편하게 막 입는 평상복이 되었다.
운동을 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확실했음에도 왜 일주일 밖에 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봤다. 제대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내 몸이 그때와 같을 거라 착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뛰던 만큼 뛰었다. 갑자기 무리하니 몸이 견디지 못했다. 몸 상태를 보고 조절을 했어야 했는데 무작정 밀어붙인 게 포기하게 된 원인이었다. 나의 현재 상태는 고려하지 않고 목표에만 집착하여 과도하게 몰아붙인 탓이다.
처음부터 많이 하려고 하면 힘들다. 힘들면 포기하기 쉽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란 책에서 나오듯 뇌가 저항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꾸준히 반복하는 편이 습관을 만들기에는 낫다. 부담 없어야 자주 할 수 있다. 습관 들이기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처음부터 많이, 제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처음 의욕은 평생 나에게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줄 것 같지만 일주일도 채 가지 못한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조금만 해보자. 하루 10분 운동이 습관이 되었다면 1분이라도 더 늘려보자. 1분씩 언제 늘리나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급격히 늘어나는 순간이 있다. 1분이 10분이 되고 15분이 될 때까지는 더디지만 30분에서 1시간이 되는 건 금방이다. 습관도 복리로 늘어난다. 처음에 자리 잡는 게 힘들지, 자리 잡고 나면 알아서 된다. 처음부터 1시간에 10km 뛰는 사람을 목표로 삼지 마라. 신발을 신고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라. 어차피 긴 인생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 없다. 천천히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샌가 처음의 나와는 아주 달라진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