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3개월의 수습 기간이 있었는데, 다행히 별 탈 없이 수습이 종료되었다. 마치 소위 때 처음 부대에 들어갔던 마음가짐으로, 모르는 걸 진짜 눈치 안 보고 물어볼 수 있는 3개월이라 생각해 시도 때도 없이 사수분을 괴롭힌 덕분에 이제는 어느 정도 업무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아 매일매일이 새롭고, 시간도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불과 1년 전 지금을 돌이켜보면 야외 숙영을 하며 밤새 교대 근무를 섰던 것 같은데, 이렇게 연이 닿아서 셀트리온에 들어오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주변에서 전역하고 자리를 잘 잡으신 선배님들을 보며 전역만 하면 대기업은 무조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서류 하나 붙는 것도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면접은 더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기업을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이뤄져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대기업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4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업 아니면 대기업인데, 사업으론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링크드인의 신수정님께서 사업가는 문제를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성공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문제를 찾는 능력보단,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받고, 훈련을 받다 보니, 단기간에 사업가적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기에 전역 후 빠르게 자리를 잡고,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선 대기업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기업에 들어왔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군에 있을 때보단 훨씬 삶의 여건이 좋아졌다. 군에 있을 때보다 주거비가 더 나감에도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 급여는 물론, 복지도 훨씬 좋다. 회사의 복지 중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2회, 야식까지 총 5끼가 무료로 나온다는 점이다. 덕분에 퇴근 시간만 되면 바로 저녁을 먹고 집에 가거나, 야근을 하더라도 영양가 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나 1명에 대한 식비가 전혀 들지 않아 그 돈으로 가족들 필요한 걸 더 살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일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군대보다 훨씬 좋다. 군대는 아무래도 24시간 상황이 돌아가기 때문에, 언제 출근해야 할 지 몰라 퇴근 후에도 항상 긴장하고 휴대폰을 손에서 뗄 수 없었지만, 회사는 업무 시간이 끝나면 마치 게임하다가 일시정지를 누른 것처럼 모두가 멈춘다. 게다가 휴일에는 정말 필요한 일 아니면 연락이 안 와서 가족과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행복하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정말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생각한 대로 된 것은 육사에 입학한 것뿐이었다. 원래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기에, 졸업 후 20년만 복무하고 전역해서 죽을 때까지 군인 연금을 타는 게 계획이었는데, 이는 임관과 동시에 틀어졌다. 이후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고, 솔직히 5년 차 전역이 승인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극악의 확률을 뚫을 줄이야... 게다가 인천에 정착하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
20대는 군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다니는 회사가 내 인생 마지막 회사가 될 수 있게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앞으로 30대, 40대, 그리고 50대는 이곳 셀트리온에서 계속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