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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창민 Jun 18. 2024

부치지 못한 이등병의 편지

훈련받다가, 홍수피해 돕다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김광석이 노래한 <이등병의 편지>를 홀로 흥얼거렸다. 기차를 타고 진해로 갈 작정이었다. 역 앞에서 부모님과 인사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24년 초여름 어느 날, 서울 하늘


그날도 하늘은 푸르렀다. 걱정은 좀 됐겠지만, 부모님도 생각보다 슬퍼하지 않았다. 당연히 군대 갈 나이가 됐으니.


무궁화호 기차는 철컹철컹 잘도 달렸다. 기차가 이렇게 빨랐나. 천천히 가면 좋으련만.  




진해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입영소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웠다. 한 달 전에 입소한 선배들이 얼차려를 받고 있었는지, 운동장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훈련받고 있었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볼과 목을 스쳤다. 어깨가 떨렸다. 손을 마지막으로 바지춤에 넣었다.   


훈련병 생활은 압박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할 땐, 심한 말을 들었고, 한밤에 군장을 메고 운동장을 돌기도 했다. 12시 넘어까지 잠을 못 자고 얼차려를 받은 적도 있다.


훈련을 잘 소화하지 못하면 나머지 훈련을 받았다. 나머지 훈련이라기보다는, 추가적으로 고통을 주는 방식이었다.   


해군 훈련 중에서 악명 높은 게 있는데, 바로 ‘소이동’이라는 훈련이다. 배 타는 해군은 멀미에 강해야 한다. 멀미에 대비하는 훈련이라고 한다. 운동장에 하늘을 보고 반듯이 눕는다. 손은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다. 그러곤 옆으로 구르면 되는 단순한 훈련이었다. 수십 번을 오른편으로 돌다가, 다시 수십 번을 왼편으로 돈다. 그러면 이내 토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지만 고통스러운 훈련이다. 내 머릿속도 핑핑, 하늘도 핑핑, 위장은 텅텅.

   

총 쏘기, 수류탄 훈련은 긴장도가 가장 높은 훈련이다. 총 쏘기 전, 수류탄 던지기 전에는 심한 얼차려를 받는다. 긴장하라, 실수하지 말라, 집중해서 사고 없이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모진 소리를 들으면 긴장한다. 머릿발이 곤두선다.   


탕탕탕. 총을 쏜다. 스무 발 정도 쐈다. 총끝은 고리에 걸고 쏘기 때문에, 총기 사고는 이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이었나. 예비군 훈련소에서 한 예비군이 총 쏘기 훈련 중에 총을 뒤로 쏴서 여러 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 이후로, 예비군 훈련 때도 총끝을 고리에 걸고 총을 쏜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도, 수류탄 훈련은 위험하다고 들었다. 수류탄을 손에 잘 쥐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떨어트리거나 목표지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던지게 되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류탄이 사람 있는 쪽에서 터졌다는 소문을 종종 들었던 터다.   


해군은 바다에서 배를 타기 때문에, 물에 빠지는 사고도 많다. 밤에 보초를 서다가 부지불식간에 바다에 빠져서 실종되는 경우, 압력이 높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 뾰족한 것에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하다.   


부둣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군인의 소식도 종종 들려왔다.    


실제로 몇 년 전 군함이 침몰해, 해군 수십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너무 슬펐다. 죽은 이들과 가족의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내가 해군 출신이어서 더 감정이입이 됐다. 모두 비극적인 일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갔다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너무 억울하다.




특히나, 홍수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대민(對民) 지원 갔다가 물에 빠져 죽는 경우도 최근 발생했는데, 높은 사람은 책임지지 않는다.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혹자는 경찰의 수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많은 국민, 군인, 군대에 갔다 온 나 같은 사람, 군대에 가야 하는 스무 살 초반 청년층이 어이없어하고 있다. 누구의 명령으로 사고는 났고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무책임하다.

   

심한 얼차려를 받다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죽은 경우, 수류탄 훈련을 받다가 수류탄이 터져 죽은 경우도 최근에 기사로 봤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군대에 있을 때, 이런 말이 많이 회자됐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누구도 안 지켜준다. 다치면 나만 손해다.’   


군대는 공적인 임무다. 군대에 가는 건 사회적, 제도적으로 정해진 규칙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안전은 공적으로 지켜주지 않는다. 의무는 공적인데, 안전은 사적이다. 이러니, 누가 군대를 기꺼이 갈 수 있겠는가.   




20년 전, 나는 다행히 ‘살아남았다.’    


시민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간다. 누구든 안전할 권리를 갖고 있다. 군인이 복무하다가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모두 들어갈 땐 이등병이었지만, 제대할 땐 ‘병장의 편지’를 흥얼거리며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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