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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Nov 03. 2024

커피 없이도 살아지네

[밤 9시 글쓰기 26] 24.11.03. 아메리카노 드립커피 통증 위통

하루 종일 마시지 않았다.

큰일은 생기지 않았다.

조금 우울하고 나른했을 뿐. 

   

매일 커피를 마셨다.

삼시 세끼 식후 30분 맞추어 가며

보약보다 더 귀하게, 마셨다.  

   

밖에선 아메리카노, 집에선 드립이었다.

여름엔 차갑게 겨울엔 뜨겁게, 

나름 도의 경지를 넘봤다.     


솔직히 시인하건대, 가격도 거들었다.

아메리카노처럼 만만한 음료도 없다.

이천원 아래로 즐길 수 있는 게 그리 흔하던가.   

   

커피가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

좋다는 견해가 한 보따리였고, 

나쁘다는 의견도 한 보따리였다.     


쓰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걸을 때, 운전할 때, 일할 때,

커피는 언제나 곁에 있었다.     


열성일 때는 직접 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세였지 않나 싶다.

전문가가 볶아 놓은 게 훨씬 좋아서다.   

  

예전에는, 묻지 마, 믹스커피였다. 

적게는 네댓 잔, 많게는 열 잔도 마셨다.

한 잔 마셔야 잠도 잘 왔다.     


담배를 끊고 나니 입맛이 변했다.

단맛이 싫어졌다.

아메리카노로 드립으로 바뀌었다.

     

커피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편치 않다는 기분이 언뜻언뜻 스쳐서다.

마음뿐, 커피 가게를 지나치지 못했다.  

   

어제 오후였다.

습관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절반쯤 마셨을까, 속이 약간 쓰린 듯했다.  

   

참으로 우매한 동물이었다.

버리면 될걸, 본전 생각에 꾸역꾸역 마셨다.

불덩이를 삼킨 듯, 뜨거운 기운이 스쳐 지났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 몸이 밥을 거부했다. 

억지로 쉬엄쉬엄 밀어 넣었다.  

   

새벽 두 시, 불쾌감에 눈을 떴다.

그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힘이 빠졌다.

친구에게 들었던 당뇨 저혈당 증세와 비슷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곧 토할 듯했고, 누우면 숨쉬기도 힘들었다.

온갖 잡생각으로 하얗게 밤을 세웠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침 밥상 앞에서, 배는 고픈데 밥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까지도 거부했다.  

   

휴일이어서 온전히 혼자 힘으로 견뎌내야 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동네 한바퀴, 반복했다.

저녁이 되면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지금, 물 한 컵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울렁거리긴 하지만 무언가 집중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힘으로 겨우 이 글을 쓴다.   

  

낮 동안 호되게 아플 때는 나만 생각났다.

지나간 모든 일이 후회였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기억 하나를 꺼냈다.

마님이 아플 때, 밥을 권하며 투덜댔었다.

야속한 듯 바라보던 그 눈빛이 아프게 떠올랐다.     


점차 가려먹어야 할 게 늘어난다.

통증에 커피도 한몫 거들었다.

담배도 힘들었는데, 이별이 잇따른다.   

  

경험해 보지 않고도 알아야 지혜롭다는데, 

꼭 몸으로 깨지고 나서야 깨닫는다.

어떻게든 알았으니 괜찮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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