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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Nov 04. 2024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면

[밤 9시 글쓰기 27] 24.11.04. 은행나무 행단 은행잎 단풍

바람이 지난다.

샛노란 은행잎이 살랑살랑 하늘을 난다.

우수수 쏟아진다.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 위를 걷는다.

이럴 때, 가을이 깊어졌음을 실감한다.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가을 진풍경이다.


대개 11월 초순쯤 절정을 이룬다.

중순이 넘어서면 길이 노랗게 물든다.

남쪽 서귀포에서는 12월 초에도 볼 수 있다.

여기저기서 은행나무 축제를 연다는 소식이다.   

  

은행(銀杏)나무는 동아시아가 원산지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취급된다.

지질학상 고생대 페름기부터 자랐다.

당시 생물종의 96%가 사라졌다.

멸종을 버티고 꿋꿋하게 현대까지 살아남은 근성 있는 나무다.  

    

예전에는 침엽수로 분류되었다.

모양은 활엽수처럼 널찍하지만,

잎의 줄기가 침엽수처럼 뾰족해서다.

지금은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다.

은행나무문(Ginkgophyta)라는 독자 계통군이다.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 있다.     


이 은행나무가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적색 목록

멸종위기종(EN, Endangered)에 속해 있다.

야생에서 사람 도움 없이 번식하고 자생하는

은행나무 군락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지정의 이유다.     

매개동물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나무의 거의 유일한 매개동물은 인간이다.

은행은 독성이 강해 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다람쥐나 청설모도 건드리지 않는다.

인류가 멸종하면 함께 없어질 생물종 1순위로 뽑힌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하여 행단(杏壇)이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향교나 문묘에, 선비가 살던 고택이나 별서에 심었다.

여의찮으면 마을 입구에 심기도 했다.

여러 곳에서 멋진 은행나무를 볼 수 있는 것도 공자 덕이다.    

 

조선 시대에는 경칩(3월 5일~6일)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합친 날과 같았다.

가을에 주운 은행을 이날까지 간직했다가

은행나무 주변에서 함께 까먹으며 사랑을 확인했다.

암수가 서로 가까이 붙어야만 열매를 맺기에,

이를 순결한 사랑의 모습으로 여겼지 않나 싶다.    

 

매일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지난다.

비 온 후 기온이 내려가며 노란 느낌이 난다.

은행은 벌써 떨어져 청소하시는 분들이 고생이다.

냄새까지는 치우지 못하는지,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게 싫어서 많이 베어냈다.

은행 효능이 여러 가지여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은행 장사하시는 분들이 전국으로 수집하려 다니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집 오는 길에 신박한 풍경을 봤다.

은행 자동 수거기라고 해야 하나.

나무에 모기장으로 깔때기처럼 설치하고,

밑에 있는 자루로 모이게 하는 장치였다.   

  

너무 큰 나무만 아니라면

구태여 베어내지 않더라도.

은행은 냄새 풍기지 않고 말끔하게 수거하고,

샛노란 단풍 보며 깊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양지애드컴이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나 보다.

근래 들어 마주한 최고의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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