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글쓰기 30] 24.11.07. 커피 담배 금연 원두 작별
허전하다.
소중했던 무언가가 영원히 떠나 버린 듯.
그립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정이 많이 깊었나 보다.
작별이 쉽지 않다.
커피가 생각났다.
위 통증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하필이면 커피라니.
의사는 절대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였건만.
모질지 못해서인지,
무언가 한 번 정을 주면 쉽게 헤어지지 못한다.
삼십년지기 담배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서도 오년 넘게 걸렸다.
헤어졌다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몇 번을 반복했다.
왠지 배신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마님이 담배와 헤어지라고 했을 때,
담배에 입문하기 전에 들었던 고향 형님 말이 떠올랐다.
이제 피울 만큼 피웠으니 그만 피워도 되겠다는 형수님 지적에
담배를 먼저 만났고, 그걸 알고 결혼했으니,
만약 헤어진다면 당신 아니냐고 했던.
그때 나는 그 말을 사극 한 장면으로 이해했다.
후궁에 푹 빠진 왕을 중전이 질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담배를 끊게 된 건 의경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마음 편히 피울 공간이 사라져갔다.
그날도 살피고 조심했던 후미진 곳이었다.
멋지게 맛나게 피웠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금연구역입니다.
과태료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내 더러워서 끊는다.
그렇게 담배와 헤어졌다.
국가까지 나서서 방해하니 끊기는 했지만,
단칼에 무 자르듯 쉽지는 않았다.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흡연 장소를 찾기도 했다.
위로가 참 많이 되었다.
자욱한 연기를 신의 은총처럼 빨아들였을 때의 그 기분이란.
할 수 있으면 젊은 처자들 피우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더 향긋해서였다.
그런 청승을 떨고서야 겨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담배에 푹 빠져 천지 분간 못 할 때,
멀리하려고 파이프로 피운 적이 있었다.
커피라고 다르겠는가.
멀리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출근부를 찍다시피 했던 커피 가게에 들렀다.
며칠 오지 않아 궁금했다고 살갑게 맞아주었다.
이제 커피를 끊었다고 그래서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껏 향기를 들이켰다.
내가 나쁜 놈이지, 커피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리도 향기로운 것을.
향만 맡아도 좋았다.
내친김에 즐겨 마시던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한 봉지를 가져왔다.
그라인더로 최대한 곱게 갈았다.
집안 가득 커피향이 꽉 찼다.
그렇게 향을 피우고,
따스한 물 한 컵을 커피려니 하고 마셨다.
담배를 끊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단 음식을 먹으면 담배 생각이 자동이라서
커피믹스를 마시지 못했다.
이걸 체로 쳤다.
프림이 눈처럼 날리고
설탕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그리고 남은 갈색 덩어리들
조심스럽게 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내 하는 꼴이 한심스러웠던지
마님이 혀를 끌끌 찼다.
한동안 그렇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곤 카누에서 드립으로,
변신을 거듭하여 정을 주었던 커피다.
그러했는데,
이제 영영 이별이라니.
밀회하듯 잠깐이라도 만날 날이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