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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쿰파니스 Nov 08. 2024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

[밤 9시 글쓰기 31] 24.11.08. 아픔 소화기질환

아픔에도 등급이 있을까.

어떤 아픔은 더 크고,

어떤 아픔은 더 작고,

어떤 고통은 가볍게 다루어도 되고,

어떤 통증은 무겁게 다루어야 하고.

     

언젠가 공동묘지를 지날 일이 있었다.

제법 있어 보이는 묘지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죽었소.     


발가락에 가시가 박혀 죽었다오.     


발가락 가시가 박혔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그게 덧나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답했다.

이유 없는 무덤 없듯, 

아픔에도 다 이유가 있고, 그 이유만큼 아프다.     


허리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

술을 잔뜩 먹어야만 가능한 줄 알았던 사족보행(四足步行)이 일상이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을 건너 화장실까지 그 뻔한 거리를

화성탐사라도 떠나듯 각오를 다져야 했다.

머리를 감는 건 사치였다.

서서 세수라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겼다. 

그때, 허리 아픈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고 말했다.      


이빨이 아팠다.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이가 흔들려 함부로 걷지도 못했다.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씹다보니 자연스레 고개가 여섯 시 오 분 전이 되었다.

잘못하여 밥알 한 알이라도 건너가 건드리면 밥맛이 뚝 떨어졌다.

식사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먹을 음식을 모두 믹서에 넣고 갈아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때, 이빨 아픈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어느날 선배가 말했다.

세상에 제일 아픈 것이 애 낳는 것인 줄 알았는데,

더 아픈 것이 있더라.

그러면서 요로 결석으로 고생해 보지 않았다면 

아픈 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단정지었다.     


다 틀렸다.

허리가 아파도,

이가 아파도,

애를 낳아도,

요로 결석도.

한 가지 아픔이고 먹을 수 있으니 살 수 있다.

제일 큰 아픔은 소화기가 고장났을 때다.     


지난 일요일 새벽 느닷없이 위통이 생겼다.

처음 이틀은 물 먹기도 힘들었다.

의사는 흰쌀죽 외에는 모든 것을 금했다.

그렇게 또 이틀을 보냈다.   

  

동티가 났다.

흰쌀죽만 조금 먹으니 저혈당증에 빠졌다.

항상 문제는 주말 아니면 밤에 생긴다.

새벽 1시 설탕물을 마시고 꿀물도 탔다.

아침 9시가 그렇게 늦은 시간인 줄 처음 알았다.

수액을 맞고 겨우 추슬렀다.  

   

죽에서 밥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쌀 위주다.

지방과 단백질과 섬유질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아직은 넘볼 수 없다.

이젠 설탕물을 준비해 놓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저녁을 맞이한다.

이대로 며칠 더 가면 당뇨 합병증까지 생길 수도 있겠다.   

  

이제야 알겠다.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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